세계적 폐암 전문의 이진수(51) 박사가 세계 최고의 암 병원으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의대 MD앤더슨 암 센터에서 경기 일산의 국립암센터로 옮긴 지 한 달.지난해 이건희 삼성 회장의 주치의를 맡아 국내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그는 이제 미국에 건너 가 진료받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보통 환자들을 위한 의사이다.
초진 환자에게 30분 진료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그는 암 환자들의 새로운 희망이다.
가족, 수십 만 달러의 연봉, 미국 의사 경력 23년 등 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포기하고 한창 활력적으로 일할 나이에 고국의 신설 병원을 맡은 그의 속마음은 과연 어떨까.
“기대는 안 하고왔습니다. 겸허한 자세로 왔기 때문에 실망할 것도 없지요.” 담백한 얼굴 표정만큼이나 솔직한 대답이다.
“사실 2년 전만 해도 한국에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1999년 크리스마스 밤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했던 창세기 구절을 읽어주며, 나도 한국엔 안 들어간다 공언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박재갑 원장으로부터 암센터가 개원하고 병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고,고민하다, 나를 원하고 필요로 하는 자리에는 가는 것이 옳겠다고 결심 했지요.”
뜻을 펼치기 위해 온 한국. 이곳에 가장 먼저 정착시키고픈 선진의료기법은 무엇일까.
“환자 중심의 병원으로 만들고 싶어요. 국내 환자들은 암에 대해 집단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것같아요. 암에 걸릴까 너무 불안해 하고, 일단 암 진단을 받으면 마치 사형선고 받은 사람마냥 충격받고 좌절하지요. 암을 삶 자체로 받아들이라고 환자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어제까지 괜찮다가 오늘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암은 아닙니다.”
그는 환자에게 마음의 평화를 주고, 새로운 치료법, 임상시험 중인 약도 과감히 도입하고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의료보험에서 인정되는 소극적 치료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는 분위기를 만들겠습니다. 정해진 레시피(치료법)에만 의존하는 정체된 사고에서 벗어 나야죠. 암치료율을 높이려면, 외과, 내과, 방사선과 등 병원내 암 진료 관련 부서들이 경쟁ㆍ대립해서는 안 됩니다. 외과에서는 수술만 하려 할 것이고, 내과에서는 항암제만 우선 처방하려 할 것 아닙니까. 관련 의사들의 조화가 무엇보다중요해요.”
혹시 국내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 “뜻이 있는 곳에길이 있지요.”
“의사나 환자나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암 치료 결과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낮아요. 치료전망이 불투명하다고,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가족 눈치 보며 치료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요.”
그가 또 하나 바꾸고 싶은 것은 환자들이 활발하게 자신의 질병에 대해 논의할수 있는 분위기이다. “암은 죄가 아닙니다. 환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있는 모임을 만들 계획이에요. 국립암센터는 암환자들만 진료받는 곳이라 그런지 다른 병원보다 분위기가 밝은 것 같아요.”
국내 암 발생 순위 1위에 오른 폐암에 대해 폐암의 명의는 이렇게 처방했다.“한국 남성의 흡연률이 세계 1위라고 들었습니다. 미국은 60년대 초 피크였다 계속 줄어들고있는 추세이지요. 담배를 끊으세요. 당연히 담뱃값도 올려야 합니다. 정제된 음식을 삼가고, 무우청, 옥수수 같은 섬유소를 많이 함유한 식품을 섭취하십시오.대장암도 급상승 중입니다.”
그러나 국내 종합검진의 열기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지적했다.
“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렇게 자주 검사할 필요가 있나요? 실제 종합검진에서 암을 찾아내는 확률은 적습니다. ”
/ 송영주기자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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