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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까치와의 전쟁 이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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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까치와의 전쟁 이젠 끝

입력
2001.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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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동안 KBS의 환경스페셜이 제100회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공영방송이 오락물에 매달려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주옥같은 환경 다큐멘터리를 벌써 100개나 만들어 방영했다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기립박수를 받을 일이다.특히 이번100회 특집 프로그램은 내가 요사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하고 있는 까치 연구에 관한 것이라 내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실제로 작년부터 제작과정에 적지 않게 관여했고 직접출연하여 이른바 전문가로서 몇 마디 보탠 터라 객관적이기 어렵지만 여러 면에서 상당히 잘 만든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우리 나라의 다큐멘터리들은 대부분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온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 프로그램은 실제로 자연과학적인 실험 결과를 담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벌써 몇 년째 까치의 과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조건적 미각 기피행동' 실험을해온 에코텍생태연구소의 이한수 박사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동물행동학 실험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한수 박사는 미국 유학시절 지도교수와 함께 수행했던 실험을 바탕으로 까치들로 하여금 과일을 싫어하도록 훈련하고 있었다.

이 같은 행동은 벌써 오래 전 미국의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링컨 브라우어(Lincoln Brower) 박사에 의해 관찰되었다. 그는 포식동물들이 태어나서 성장하며 어떤 먹이는 먹어도 되고 어떤 먹이는 피해야 하는지를 배워 가는 과정을 연구했다. 포식동물들은 누군가를 잡아먹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잡는 행동을 보이지만 차츰 경험을 통해 가려먹을 줄 알게 된다.

브라우어 박사는 둥지에서 갓 날아 나온 새내기 어치가 제왕나비를 잡아먹고 겪는 경험을 기록했다. 아무런 세상 경험이 없는 새내기 새는 화려한 날개에 통통한 배를 지닌 제왕나비를 발견하곤 이내 쫓아가 잡는다. 한쪽 발로 나비를 내리누르며 부리로 날개를 떼어낸 후 통째로 삼킨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어치는 갑자기온몸을 부르르 떨며 깃털을 곤두세운다. 그리곤 방금 전에 먹어치웠던 나비를 게워낸다.

제왕나비의몸 속에는 애벌레 시절 박주가리 잎을 갉아먹으며 모아뒀던 강심배당체가 잔뜩 들어 있다. 강심배당체는 많이 섭취하면 심장 이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어치는 이 단 한번의 끔찍한 경험을 평생 기억하며 제왕나비처럼 생긴 나비 근처에도 가질 않는다.

이번에 환경스페셜팀이 수행한 실험에서도 먹으면 구토와 배탈을 일으키는 물질이 함유된 배 조각을 먹어본 까치들은 다시는 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네모로 조각 낸 배는 물론 배 하나를 껍질 채 그냥 줘도 명백한 기피 현상을 보였다.

그 결과 이 실험에 동참한 과수원의 피해는 지난해 -15%에서 1% 미만으로 현저하게 줄었다. 일단 배를 기피하도록 훈련받은 까치들은 배를 쪼아먹지도 않거니와 과수원에서 온갖 벌레들을 잡아먹어 해충에 의한 피해도 줄여 수확량도 증가했다. 까치에 의한 피해를 줄여 보겠다고 열심히까치 둥지를 털어 내거나 까치들을 사살해버린 과수원들에 비해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까치는 원래 잡식성 동물이라 과일도 먹지만 과일이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과일은 기본적으로 당분을 제공할 뿐이므로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그들은 곤충을 비롯한 다른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우리들에게 그렇듯이 과일은 까치들에게도그저 맛있는 후식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 우리 선조들은 가을에 감을 따면서도 가지 끝에 몇 개는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여유를 지녔었다. 우리가 농사를 짓느라 농약을 너무 많이 뿌려 까치들이 좋아하는 곤충들의 숫자가 너무 줄어드는 바람에 그들이 하는 수 없이 과수원 서리에 나선 것이지 좋아서 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똑같은 일이 전봇대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들이 둥지를 틀기 좋아하는 나무들을 너무 많이 베어내는 바람에 하다못해 그 불편한 전봇대라도 찾는 것이다. 내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관찰한 바에 따르면 까치들은 나무에 둥지를 틀 때에도 특별히 굵은 가지들이 사방팔방으로 잘 뻗은 늠름한 자리를 선택한다.

가지라고는 가로로 달랑 하나밖에 없는 전봇대는 까치의 풍수지리로도 결코 명당이 될 수 없다. 둥지를 틀 곳이 오죽 부족하면 건물 옆에 간신히 붙어 있는 간판 뒤 좁은 공간은 물론 언제라도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아파트 베란다 곁에도 집을 지을까.

이번에 전북 남원과 전남 나주의 과수원이 터득한 공존의 지혜는 이제 전국으로 번질 것이다. 언뜻 보기에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자연도 잘 들여다보면 공존의 길을 열어 놓고 있다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였는데 믿지 않을 이 누가 있으랴. 매년 수십억의 예산을 둥지 제거작업에 쏟아 붓는 한전이 단 한 해 예산의 반만이라도 실험에 투자하면 전봇대 곁으로도 공존의 대로가 활짝 열릴 것을 왜 모를까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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