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에서 잇따라 탈락한 80대 실향민이 가출한지 이틀만에 임진각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5일 오전 9시20분께 경기파주시 문산읍 사목리 임진각 망배단 뒤 자유의 다리 연못에서 실향민 정인국((鄭仁國ㆍ 82ㆍ경기 고양시 덕양구 신평동)씨가 물에 빠져 숨져 있는 것을 임진각 관리소장 김국현(46)씨가 발견했다.
정씨는 연못 배수구쪽에 주먹을 움켜쥔 채 엎어져 숨져 있었으며 뒷머리에 핏자국이 나 있었다. 정씨는 가출 당시 착용했던 쥐색 모직점퍼 상의와, 회색 운동복 하의 차림에 월드컵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정씨는 4일밤 집을 나갔으며, 셋째 아들 철민(哲民ㆍ48)씨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잘있어라,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러 간다”는 말을 남긴뒤 소식이 끊겼다. 정씨는 지난해 6월19일 이산가족 상봉 신청서를 내 4차례 추첨에서 모두 떨어졌으며,이전에도 세 차례 더 상봉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정씨가 “이산가족 상봉이 연거푸 무산된 것을 몹시 아쉬워했다”는 가족들의 말에 따라 이를 비관, 자유의 다리에서 7㎙ 아래 연못으로 투신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다.
황해도 신천이 고향인 정씨는 1945년 공무원 전력 때문에 친일파로 몰릴 것을 우려해 부모와 큰아들(철환ㆍ당시 6세)을 고향에 남겨둔 채 부인 임영선(林永善ㆍ78)씨와 당시 한살배기 둘째 아들 철수(哲秀ㆍ56)씨 만을 데리고 월남했다.
정씨는 이 후 47년 경찰학교 졸업 후 경찰에 투신, 이승만(李承晩)대통령 시절 경무대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제주도와 경남 김해, 충북 충주 등에서 20여 년 경찰공무원 생활을 하다 경위로 퇴직했다.
5년 여 전 고향에 한걸음이라도 다가서기 위해 고양시로 집을 옮긴 정씨는 그동안 북에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관련당국을 통해 수없이 서신을 보내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임진각을 다녀오곤 했다.
한편 정씨의 빈소가 차려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 명지병원 영안실에는 갑작스런 정씨의 죽음에 가족들이눈물조차 말라버린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임씨는 “남편은 북에 두고 온 큰아들과 부모님 등 가족생각에 항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면서 “특히 젊은 사람들이 상봉자로 나설때는 ‘고령자가 먼저 가야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들도 “아버지는 TV에서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을 볼 때마다 소리내어 울곤 했다”면서 “죽기 전에 북에 있는 가족들을 볼 수 있다면 언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송원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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