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10월6일 이집트 대통령 무함마드 안와르 엘 사다트가 카이로 근교나스루에서 피살됐다. 63세였다.사다트는 1973년의 제4차 중동전쟁을 기념하는 이집트군의 분열식을 사열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일단의 군인들이 대열에서 뛰쳐나와 사열대로 다가가 사다트를 비롯한 귀빈석 인사들에게 라이플을 발사하며 수류탄을 던졌다.
사다트는두 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고, 그 외에도 열 명의 사망자와 4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대통령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내 사망했다. 현장에서 테러리스트 둘은 사살되고, 다른 둘은 체포됐다. 이들은 사다트의 대 이스라엘 화해노선을 비판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그룹에 속해 있었다.
사다트는 암살되기 한 달 전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주장하는 이집트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을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두 사람을 포함해 이 테러에 연루된 5명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이듬해 재판을 거쳐 처형됐다.
사다트는 육군사관학교와 육군대학을 졸업한 뒤, 나세르가 이끈 1952년의 이집트혁명에 자유장교단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그 뒤 국무장관, 국민회의 의장, 부통령 등을 지냈고, 1970년 나세르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했다.
1973년의 중동전쟁 때는 직접 이집트군을 지휘해 군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 뒤 현실주의적 온건노선을 취해 1977년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중동 평화의 길을 열었다.
사다트는 이 공로로 이듬해인 1978년 이스라엘 수상 메나헴 베긴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79년에는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사다트의 노선이 반드시 옳았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의 피살은 평화의 적이 외부에만이 아니라 내부에도 있음을 일깨운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