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부부 몇 쌍과 만나 제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중의 한 선배는 종손이었다. 어떻게 된 계산인지 모르지만 일년에 제사가 11번이라니 거의 한 달에 한번 제사가 있는 셈이다. 며느리가 직업이 있지만 일은 언제나 종부들의 차지이다.소위 진보적이라는 남자들은 그 선배의 부인을 위로하며 종손이라고해서 얼굴도 못 본 사람의 제사까지 지내는 것은 좀 너무한 일이 아닌가, 아주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며 그 대안으로 얼굴을 본 2대조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합리적일 거라는 결론에 자기들끼리 도달했다.
한참 그 합리적인(?) 토론을 듣고 있던 내가 그럼 시할아버지나 시할머니는 물론 시아버지나 시어머니 얼굴도 못 본 여자는 ?이라는 질문을 하자 그들은 갑자기 말을 그치고 하하 웃을 뿐이었다. 합리적이고 진보적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이지만 웃을 밖에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한가위 명절이 지났다. 나 또한 길고 긴 장정을 끝냈다. 해마다 명절이 가까워 오면 여자들은 병이 도지고 남자들은 피곤해진다. 이 명절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언제나처럼 빠짐없이 내게 다시 찾아왔다.
지방이 다른 시댁 음식이 익지 않아 사실 일은 시어머님 차지였으니 나는 설거지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이렇게 해요? 저렇게 해요? 시어머님께 물으면서 서툰 일손을 보태려니 죄송스러운 마음 뿐이다.
그렇다고 시어머님이 일하시는데 방으로 가서 남자들과 TV를 보고 있을 수도 없고 그저 부엌을 서성이려니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더 피곤할 뿐이고 내가 피곤해 하니 남편 또한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
내가 아는 한 젊은 며느리는 서슴없이 시어머니 돌아가시면 난 교회나가겠어요, 라는 말을 뱉는다. 제사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제사를 받으시는 조상들은 마음이 편할까?
서울에 친정이, 지방에 시댁이있는 나는 명절에 거의 친정에는 가본 일이 없다. 언니조차 미국에 있으니 차례를 지내러 온 오빠가 오후에 처가로 떠나고 나면 친정집에는 달랑 두 노인네뿐이다.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서도 솔직히 내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이럴 때면 엄마가 어릴 때 나와 오빠를 두고 했던 차별이 이해가 가기도 했고 기를 쓰고 아들을 나으려는 여자들의 마음도 새삼 헤아려 진다.
딸만 둔 선배는 이제 좋건 싫건 여자들의 문제가 자신의 문제임을 불현듯 깨닫고 마음이 불편해졌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마누라야 하는 수 없지만 이렇게 예쁘고 똑똑한 딸들이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고 이 담에 시집을 가서 음식도 물도 선 곳에 가서 설거지만 하고 있을 생각을 하면 화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선배는 갑자기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내 자신이 아들만 둘을 키우고 있긴 하지만 이담에 딸만 둔 집안의 며느리들을 들이게 되면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우리 집으로 오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나는 자신이 없다. 마음은 딴 데 몸은 여기에 있는 모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명절문화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일년에 한 두 번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고 음식을해 먹는 것, 조상을 기리고 서로를 익히는 것 빼고는 다 바뀌어야 하지않을까.
나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추석엔 친정에 설엔 시댁에......이담에 내가 시어머니의 입장이 되면 그러하리라고. 내가 공자의 78대손이지만 우리 할아버지인 공자님이 살아 온대도 별로 나를 나무라지는 않으실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마음이고 그리고 관계의 따뜻함일 테니까. 모두에게 기쁜 명절, 모두가 기다리는 명절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나는 새삼 그것이 우리 세대의 숙제로 다가왔다는 생각을 피할 수 없었다.
공지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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