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4일 밝힌 출자총액 제한제 개선 등 대규모 기업집단 핵심규제완화안이 당초의 공정위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선 것임에도 불구하고 재계와 타 경제부처는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재경부 등은 공정위의 개선안이 부처 협의과정에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만큼 최종안에서는 더욱 완화한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출자는 풀되 의결권은 묶는다.
당초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재벌의 선단식 경영행태를 차단하고 부실 한계기업 정리를 촉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고집해왔다. 공정위가 이날 밝힌 개선안은 출자를 무제한 허용하고 한도(순자산의 25%) 초과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제한함으로써 투자 명분은 주고 재벌규제의 수단은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대기업 투자에 얼마간의 유인책은 되겠지만 본질적인 규제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타 경제부처의 입장이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가령 외국인 지분이 60%대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나 포항제철의 외국인 의결권은 보장하고 국내 계열사나 특수관계 법인이 보유한 순자산 25% 한도초과분 의결권은 제한할 경우 최악의 경우 경영권 위협요인이 될 수도 있다”며 “이는 국익에도 도움이 안 되는 조치”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이 승인하고 주주가 동의한 출자에 대해 정부가 의결권을 묶겠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전경련 등 재계는 출자제한 자체의 전면 백지화를, 재경부 등은 출자한도의 순자산 40~50% 완화와 예외 대폭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 자산 3조원 이상 규제
공정위가 밝힌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자산총액 하한선 3조원을 현재 재계 순위에 대입할 경우 26위인 신세계(자산총액 3조2,000억원)까지 포함되게 된다. 즉 규제 대상 그룹이 30개에서 4개 줄어드는 셈이다.
계열사간 출자나채무보증 등 재벌식 경영폐해가 하위집단에서 더 심각한 만큼 규제 대상을 더욱 늘려야 한다는 당초의 공정위 입장에 비춰 볼 때 전향적인 자세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0대그룹’으로 하자는 재경부나 기업집단 지정제 자체를 없애자는 재계의 입장에서 볼 때 공정위의 개선안은 ‘하나마나한’ 조치일 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산총액 1위인 삼성그룹(69조8,730억원ㆍ3월말현재)과 3조원 규모의 그룹이 동일한 규제를 받도록 한 것을 개선됐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전경련은 이날 논평을 통해 “기업집단은 자산총액 10조원 정도로, 그것도 한시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공정위의 이날 개선안에 대해 재계와 경제부처는 ‘공세’의고삐를 늦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최종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 지 여전히 미지수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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