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중요하다 /새뮤얼 헌팅턴 등 엮음ㆍ김영사 발행“가장 핵심적인 보수의 진리는 이런 것이다. 사회의 성공을 결정짓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이다. 가장 핵심적인 진보의 진리는 이런 것이다. 정치는 문화를 바꿀 수 있으며 그리하여 정치를 정치 자신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다.”(미국 사회학자 패트릭 모이니한)
과연 문화가 한 사회의 정치ㆍ경제적 발전을 선도하는가. 혹은 자유, 번영, 정의를 창출할 수 있는 문화는 따로 존재하는가.
최근 미국 테러사건으로 새삼 각광받고 있는 ‘문명 충돌론’의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과 하버드대 국제ㆍ지역연구아카데미 수석교수 로렌스 해리슨이 공동으로 편집한 ‘문화가 중요하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1999년 세계적 명망의 사회과학자와 저널리스트 등 22명이 한 자리에 모인 하버드대 주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모았다.
경제사가 데이비드 랑드, 정치학자 세미무어 마르틴 리프셋과 루시안 파이, 교육사회학자 네이던 글레이저를 비롯해 동양계 학자들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투 웨이 밍 등 참석자의 면면은 쟁쟁하기 그지없다.
헌팅턴은 이 책의 서문을 바로 한국과 가나의 경제발전에 대한 비교로 시작한다.
“1990년대 초 나는 가나와 한국의 1960년대 초반 경제자료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60년대 당시 두 나라의 경제상황이 아주 비슷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산업강국으로 발전했다. 반면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엄청난 발전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헌팅턴은 스스로의 질문에 “문화가 결정적 요인”이라고 답한다.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 등을 하나의 가치로 생각한다. 가나 국민들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정말 그러한가? 헌팅턴 식의 해석은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과 베버리안의 대립, 동구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전까지 벌어진 제3세계 학자들의 종속이론ㆍ신식민주의론과 서구의 발전이론의 대립을 연상시킨다.
이 책의 편자들은 분명 후자에 속하는, “미국의 정치제제를 원활하게 기능하도록 만든 것은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문화기반”이라고 외친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사상적 후예들이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세계화로 재편된 21세기는 이른바 ‘80대 20의 사회’로 빈자와 부자,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격차가 점점 커져 과거 그 어떤 시기보다 훨씬 더 가난하고, 불공정하고, 권위주의적인 세계가 됐다.
이런 세계에서 한 국가 혹은 특정 인종ㆍ사회집단의 문화를 잣대로 정치ㆍ경제적 성취를 가늠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후진국가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치와 태도를 혁신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세계화된 세계’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렵다.
심포지엄 참석자인 문화인류학자 리처드 쉬에더는 그래서 이 심포지엄 자체를 “새로운 복음주의자에 의해 조직된 제1세계의 거만 떨기”라고 맹비난한다.
발전이란 서구가 다른 문화권에 강제로 부과하는 개념에 불과하며, 저마다의 목표와 윤리를 가진 문화를 다른 문화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문화상대주의의 입장이다.
헌팅턴은 심포지엄을 조직하는 행정적 책임을 맡은 듯하고, 아주 짧은 서문 외에는 한 편의 글도 싣지 않았지만 번역판을 낸 출판사는 책 제목 앞에 ‘새뮤얼 헌팅턴의’라는 부제를 큼지막하게 달아 눈길을 끌려 한 것도 거슬린다.
하지만 여하튼 이런 다양한 견해의 표출로 이 책은 인류의 보편적 목표가 되어버린 ‘서구식 발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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