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로 산다는 것 / 박영택지음ㆍ마음산책 발행금호미술관에서 10년 가까이 큐레이터로 일했던 미술평론가 박영택(경기대 교수)은 직업상 많은 작가와 작품을 만났다.
그 수많은 인연 중에는 ‘거품 속의 비수’ 같은 존재들이 있었다. 거짓과 허위로 뒤덮인 거품 같은 현실, 거품 같은 화단을 등지고 속절 없는 가난과 고독 속에 숨어 살며 작업에만 몰두하는 그들은 그에게 비수로 다가와 상처를 입혔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상처같은 기억을 남긴’ 예술가 10명의 작업실을 기행하며 쓴 산문집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가는 10명이다. 한결같이 미술동네의 소란이나 세간의 이목에서 떨어져 있는 변방의 아웃사이더이고 대부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않았다.
경주 산 속 허름한 방 한 칸, 궁핍이 절벽처럼 둘러쳐진 절대고독의 공간에서 흑연가루를 수 천 번 문질러 정신의 뼈 같은 선을 뽑아내는 화가 김근태. 목수일로 최소한의 생계를 꾸려가며 작업하는 화가 김 을.
거친 바다에목숨을 내맡긴 채 갑판이나 좁은 선실에서 몸소 겪은 파도를 그려내는, ‘청도’라고만알려진, 정확한 이름이며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선원.
만행하는 선승처럼 전국을 떠돌며 자연풍광을 찍고 있는 사진작가 정동석. 시골 초등학교 작업실에 몸을 숨긴 채 깊고 어두운 화폭 속에 가라앉은 화가 김명숙….
스스로 둘러친 단절 가운데 내면 속으로만 파고드는 그들의 삶에서 지은이는 몇가지 공통점을 찾아낸다.
‘자신의 일 이외에는 완전히 무심한 심플한 삶’ ‘사사로운것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완전히 삶을 연소하고 싶다는 바람’ ‘정답이 없는 그림과 인생에 쉽게 머물거나 고이지 않고 부단히 탈주를 감행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살이의 깨달음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 등이다.
그들은 ‘거짓세상에 맞서 작품 속에 자신의 삶의 진액을 쏟아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엄격하게 자신을 친친 동여매는’ 자기치유적 자폐적 작업에 매달린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 고달픈 천형을 견디는 조각가 염성순의 다짐은 감동적이다.“세상의 막막함과 추위에 비례해서 자신의 내부로, 어둠과 고독과 축축함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야 한다. 어둠이란 실은 한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램프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지은이는 그들을 애정과 연민의 눈길로 바라본다. ‘넘어야할 벽, 깨야 할 벽 앞에 막막하게 선 채 다시금 화폭 속으로 무모하게 덤벼드는’ 그들을 마음으로부터 응원하다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의 삶에 비하면 나의 일상이나 인생이란 얼마나 허약하고 나약하며 게으른 것이냐”는. 그리하여 “그림을 보러 갔지만 돌아와 책상에 앉아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국 지구상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의 치열한 삶을 보고 온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그 깨달음을 나누고자 독자에게 보내는 신호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작가들이 소외당하는 미술계 풍토를 착잡한 마음으로 비판한다.
“부박하고 가벼운 세속과 시늉 뿐인 껍데기 그림, 그리고 몰염치, 자기 현시와 세속적 욕망으로 썩어가고 있는 오늘 우리 화단에 비춰봤을 때, 그들의 태도와 삶은 소중한 성과이자 성찰과 반성의 거울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앞서 여러 인용문에서 여러분이 충분히 짐작했겠지만, 지은이는 빼어난 글솜씨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묻어난다.
“어둡고 캄캄한 마음 속에서 하나씩 둘씩 점멸하는 그림들은내 삶의 등불이자 끊임없이 의식을 벼려주던 것들”이라는 문장은 가슴 아픈 짝사랑의 흔적처럼 보인다.
이 책은 잊고 있던 것들을 생각나게 한다. 시인 기형도가 그리워했던 ‘더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일깨운다.
그들 숨어사는 외톨박이들의 예술에 바친 삶은 무딘 일상의 살갗을 문지르는 까칠까칠한 자극으로 다가온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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