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왜 역사가가 되었나 / 피에르 노라 엮음ㆍ에코리브르 발행‘아버지가 물었다. “이제 넌 뭘 할 테냐?” “역사를 공부하겠어요.” 나는 대답했다.
부모님은 경악하셨다. 역사는 매력적인 학문이 되지 못했으니까. 재건에 몰두해 새로운 것을 꿈꾸었던사람들은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모의 실망에도 불구하고 미셸 페로는 역사를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소명(召命)’이라는숭고한 동기를 내세웠더라면, 가슴은 들끓었을지언정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페로는 학교 제도에서 선택의범위가 제한된 탓에 역사를 전공하게 됐다는 ‘타당한’ 설명을 내놓았다.
글을 쓰거나 사고를 하는 창조적인 길을 걸으려니 무능을통감했다는 적성의 문제도 있었다. 무엇보다 실제적인 것, 구체적인 것을 갈망하는 ‘개인적취향’이 결정적인 동기로 작용했다.
이런 이유때문에 역사를 공부하게 된 미셸 페로는 여성의 조건이라는 역사적 주제가 학문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여성사를 개척한대표적인 여성사가가 되었다.
‘나는 왜 역사가가 되었나’라는 제목의 책은 7명의 프랑스 역사가가 자기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책을엮은 피에르 노라는 그러나 이 책이 자서전이나 내적 고백, 정신분석 등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사학자가 연구 대상을 향해 던졌던냉철한 시선으로 자신을 보면서 나름의 고유한 문체와 방법론으로 기록한 개인사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엮은이는 ‘에고 역사(ego d’histoire)’라는 새로운 용어를 내놓는다. 그것은 지식 세계 뒤로 숨어 있던 사학자의 얼굴을 드러내는 실험적인 시도이다.
새로운 시도는 설레는 한편 불안하고 어색하다. ‘나는왜 역사가가 되었나’라는 질문을 받은 역사가들도그랬다.
중세사가 자크 르 고프는 “거북하다”고 털어놨다. 불가피하게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화가 치밀고 목소리가 높아지는탓이다.
르 고프는 그러나 중세 서양의 인류학이라는 방대한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과거의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을 통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는 전체의 삶 가운데 역사가로서의 삶을 조명해주는 부분을떼내 ‘에고 역사’를 구축하기로 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역사가 조르주 뒤비는 “내 공적인 생활만 언급하면서, 한 사람의 이력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가를 보여줄것”이라면서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며 한숨을 쉰다.
뒤비는 중세 전반의 경제ㆍ사회사와 미술사를 두루 섭렵하면서 ‘정신상태’라는 중요한 어휘를 역사 문헌에 도입하는 등 역사의 진실을 좇아왔지만, 정작 자기자신의 진실을 내보이는 것은 수월치 않은 문제임을 고백한다.
뒤비가 두려워하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 놓고 기억을 짜맞추는 ‘속임수’이다. 그래서 그는 몇 가지 기억을 먼저 끄집어 낸 뒤, “설명의길잡이가 되어줄지도 모르는 사실”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역사가가 자기 자신을 역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에고역사’가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자크 르 고프는 이런 의문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역사가 학문뿐만 아니라 사람도부양하고 있으며, 사학자 또한 이 사람들 속에 살고 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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