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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책] 성석제 소설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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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책] 성석제 소설 '순정'

입력
2001.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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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순정’은 유쾌지수가 대단히 높은소설이다.불쾌할 여지조차 없다. 너무나 유쾌해서 “단숨에 읽게된다”는 부풀려지고 의례적인 표현조차 상투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유쾌함을 동반한 성석제의 상상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유쾌함의 가장 큰 덕목은 사람의 긴장을 이완시킨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우리가 ‘듣고 보고 겪었으며 앓고 갈무리한 현실의 순수한 재현’이 아닌 성석제가 재해석한 ‘순정한 가짜’의 세계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심신이 무장해제되는 느낌을 받곤한다.

다르게 표현하면 여백이 많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여백이 극대화하는 순간 인간의 상상력과 해석능력은 무한대로 치닫는다.

나는 개인적으로 인간의 능력 중에서 가장 위대한 능력을 ‘해석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그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것도 인간에게 해석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눈물을 흘리고난 뒤, 그것을 닦아 맛보는 버릇을 가진 ‘순정’의 주인공 이치도는 “하품 끝에 흘린 눈물이나 서러워서 흘린 눈물이나 분통이 터져 흘린 눈물이나 다 비슷한 맛”이라고 말한다.

진짜로 그런 것일까. 이 대목에서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슬픔의 근원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순정’은 내내 그런 식으로 우리의 해석능력을 테스트한다.

그렇지만 그 테스트는 ‘작고 고소한 배추를 골라 야무지게 손질하고 성질이 강하고 선연한 빛깔의 양념을 쳐서 꼭 익을 만큼 두었다가 간장 종지만한 새하얀 그릇에 담아낸 김치’처럼 맛깔나다.

이치도라는 도둑의 전기(傳記) 형식을 빌린이 소설에서 작가는 도둑 중에서 가장악질 도둑은 ‘가난한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밥그릇을 도둑질해서 어쩔 수없이 그 사람을 도둑으로 나서게 만드는’ 따위의 도둑,즉 제 도둑질로 새로운 도둑을 만드는 도둑이라고 얘기한다. 이 대목에서 해석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면 불편하고 부끄러운 내얼굴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인식의 전환이라는 것은 ‘내 안으로부터 출발하여 밖으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내가 얼핏 가벼워 보일 수도있는 ‘순정’이라는 소설을 무겁게 생각하는 이유다.

장혜신 마음과마음 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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