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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 김학철 선생

입력
2001.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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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그의 부음을 들었습니다.일간신문들은 한 귀퉁이에 ‘마지막 분대장’이 영원히 잠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것도 그가 숨을거둔 지 나흘이나 지나서였습니다.

그의 유언은 자신의 부음을 일절 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길었던 연휴가 지나고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우리는 김학철(金學鐵ㆍ1916~2001) 선생의 부음을 그냥 잊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3년 전이던가요, 그를 두 번째 만났을 때 팔십도 훨씬 넘은 그의 눈빛과 웃음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해맑았습니다.

그는 그때도 자신을 여전히 ‘독립군’이며 ‘직업적혁명가’라고 불렀습니다. 일제시대 함남 원산에서 출생해 중국으로 건너가 무장독립투쟁 조직인 조선의용대에 참가, 일본군과 교전중 포로로 붙잡혀 나가사키 형무소에 투옥돼 한쪽 다리를 잃고, 해방 후에는 ‘로동신문’ 기자로 있다가 북한체제를 비판하고 중국으로 망명, 문화혁명 와중에는 마오쩌둥을 비판한 소설을 썼다가 반혁명현행범으로 몰려다시 10년 옥고…. 그는 문자 그대로 ‘격정시대’를살았습니다.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과 소설 ‘해란강아 말하라’ ‘무명소졸’ 등에서 보여준 그의 언어는 그의 눈빛과 말투만큼이나 투명하고도 직정적이었습니다.

어느 구절을 펼쳐보더라도 그의 문장은 에두르지 않고 꼿꼿하고 멋스럽고 푸근했습니다. 올해 6월에 나온 산문집 ‘우렁이속 같은 세상’은 결국 그의 유작이 됐습니다.

‘남을 물어넣고라도 자신만은 살아보겠다고 아득바득하는 인간들이 시글버글하는 세상’에 ‘진국인지 반편이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운 인간’들이 설치는 지금 세상 꼴을 그는 “호두 속 같고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이랄밖에 없다”고 하는군요.

북한, 중국 동포사회뿐 아니라 바로 지금우리 사회에 대고 하는 말입니다.

“글쓰기는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는 모험”이라던 그의 말이 쟁쟁합니다. 자신의 말대로 그는 스스로의 신념과 문학과 해로동혈(偕老同穴)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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