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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원유헌 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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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원유헌 사진부기자

입력
2001.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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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6월29일 오후5시 50분께 서울 서초구 서초4동 삼풍백화점 5층건물 2개동중 왼쪽 A관이 붕괴돼 1,00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변이 일어났다.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4월 대구가스폭발에 이은 대형 참사였다.처참한 현장의 모습은 카메라대신 절단기와 해머를 들고 싶은 심정이 앞서게 했다. 모든 매몰자가 살아 있는 듯 했지만 정작 생존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찾기 힘들었다. 추가 붕괴와 화재 등으로 생존자에 대한 희망은 줄어 들었고 구조대원들 조차 생존자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틀쯤 지나 중장비 조기투입문제로 구조본부와 희생자 가족들이 다투고 있을 즈음 백화점 환경미화원 24명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7월1일 오후4시께 였다.

반가움과 욕심에 자원봉사자복장을 하고 카메라와 렌즈는 주머니에 숨긴 채 지하 3층으로 잠입, 미화원들이 구조돼 나올 입구까지 접근했다. 기둥과 철근이 얽혀있어 서있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는 좁은 통로 옆 쓰러진 기둥 위에 비스듬히 누워 3시간을 기다렸다.

팔뚝 크기의 구멍을 사람 몸하나 빠져 나올만큼 넓히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생수와 음식물, 비닐부대 등이 안으로 공급됐다. 하지만 쿵쿵거리는 추가 붕괴 소리는 지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주고있었다. 옆 사람과 얘기나 하면 좀 나을까 싶어 돌아보니 50대 중년의 자원봉사자가 땀에 젖은 채 서있었다.

“힘들지않으십니까?” “이렇게 들 살아나오시니희망이 생깁니다. 제 아들놈도 여기 어디 있을 텐데요‥.” 실종자 가족이었다. 음료회사 간부인 최씨 정도로만 기억하고 그를 향해 셔터를 눌렀다.

최씨는 궂은 심부름을 다하며 미화원 24명이 모두 구조될 때 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후 추가 생존자 없이 열흘가까이 사망자 숫자만 집계되고 있었다. 사고수습본부도 점차 수습에만 신경 쓰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생존자 소식이 날아들었다. 백화점 아르바이트생 최명석군이 매몰된 지 11일째인 9일 아침 살아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TV를 통해 최군 아버지 인터뷰를 보니 안전모를 쓴 모습이 낯이 익었다. 혹시나 해서 필름을 뒤져 봤더니 미화원 구조현장에서 만났던 최봉렬씨였다. 그는 자원 봉사자들이 해단식을 한 이후에도 현장에서 일을 돕고 있었다.

얼마 전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현장에서 생존자 발굴을 포기하고 시신발굴 작업에 중점을 둔다는 기사를 봤다. 사건 성격과 규모면에서 삼풍백화점붕괴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 이른 판단이 아니었던가 한다.

미국 언론이 첨단 첩보를 통한 수사상황과 이번 사건이 가져올 경제적 득실 등에는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발굴 상황과 생존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무심하다는 생각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았으면 하는 아쉬움이든다.

원유헌 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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