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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21 / 미술품 경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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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21 / 미술품 경매 현장

입력
2001.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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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7일 오후7시 23분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옥션 하우스. 100여 평 남짓한 경매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서울옥션 주최로 제43회 한국 근ㆍ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가 시작된 지 불과 10분 여. 경매사의힘찬 마이크 소리도, 경매 참여자 200여 명의 숨소리도 일순 멈췄다.

모든 시선은 오른쪽 회전 테이블에 놓인 공책 만한 '작품'과, 왼쪽 전광판에 켜진 경매번호 '13번'과 그 작품 사진에쏠렸다.

중앙 단상에 있던 경매사 김순웅(48ㆍ㈜서울옥션 대표)씨가 이 정적을 깨뜨렸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박수근 선생님의 미공개작 '앉아 있는 여인'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작품인데요, 고단했던 우리 어머니 세대를 감동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예정가격은 3억 3,000만원에서 4억 원, 시작가(價)는 2억 7,000만 원부터 1,000만 원씩 호가(呼價)하겠습니다."

이렇게 경매가 시작된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의 1960년대 작품 '앉아있는 여인'(하드보드에 유채ㆍ세로 28㎝, 가로 22㎝)은 순식간에 호가 4억 원을 돌파했다.

응찰가가 예정가를 넘어서자 과열을 막기 위해 호가는500만 원으로 하향 조정됐고, 처음의 응찰자 4, 5명은 결국 경매장 옆 VIP 룸에서 전화로 응찰한 2명으로 압축됐다.

4억 5,000만 원, 4억 5,500만 원, 4억 6,000만 원….

경매장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경매사의 떨리는 목소리. "이제 마지막으로 4억 6,500만 원. 3번 호가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4억6,500만 원 있습니까? …. 네, 끝났습니다. 4억 6,000만 원에 전화로 응찰하신 손님, 낙찰됐습니다."

이어지는 커다란 박수 소리. 수화김환기(1913~1974)의 '점'(지난 해 4월 3억 9,000만 원)을 누르고 국내 현대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가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미술작품과 애호가가 만나는 뜨거운 현장이다. 화랑이나 미술관에 전시됐던 '작품'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철저한 시장원리에 의해 '상품'으로 둔갑하는 거래소이자, 화랑이나 작가가 관람자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했던 작품 가치가냉정하게 재평가되는 현장이다.

실제로 이날 몇몇 유명작가의 작품은 단 몇 차례 호가 후에 유찰됐고, 호랑이를 그린 평범한 민화 한 점은 예상을깨고 920만 원에 팔렸다.

현재 국내 미술품 경매회사는 ㈜서울옥션, ㈜마이아트, 옥션아트, 삼성옥션 등 100여 개(인터넷 사이트 포함).

소장자가 작품을 경매회사에 맡기면경매회사는 작품 감정 후 예상가와 내정가를 책정하고, 보통 1주일 동안의 전시 후에 경매장에 내놓는 방식이다.

㈜서울옥션의 경우 1년 4차례 메이저경매를 통해 낙찰되는 금액은 50억 여 원.

다른 경매회사 실적을 합쳐 봐야 전체 미술품 거래시장(활황기 기준 2,000억~3,000억 원)의10%도 안 되는 규모이지만, 이 미술품 경매시장에 거는 미술계 인사들의 기대는 크다.

경매장에서 만난 미술평론가 김종근(홍익대 겸임교수)씨는 "화랑에서 4,500만 원을주고 산 그림을 다시 그 가격에 화랑에 팔 수 있을까요? 가뜩이나 층이 엷은 미술 애호가들이 작품 구입을 주저하는 것도 이러한 '2중 가격제'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고객이 산 작품을 가장 쉽게 제 가격을 받고 팔아주는 유일한 곳이 경매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미술시장의 큰 병폐로 지적되는 '호당 가격제'를 깨뜨릴 대안도 역시 경매다.

유명작가의 작품이면 질과 희귀성에 상관 없이 무조건 '크기(호수)'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 '호당 가격제'.

한 미술계 인사는 "경매시장이 미술시장의40~50%를 장악해야 2중 가격제와 호당 가격제를 없앨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밖에 미술시장의 양성화, 작품가격의 공신력 제고 등도 경매의미덕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개선과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 소위 '팔리는작가' 위주로 경매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

실험성 강한 작품이나 신진 작가의 작품은 아예 발을 디딜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또한 화랑이 신진ㆍ무명 작가를 발굴해 전시회를 열어주고 생활비를 대주면서 애써 끌어올린 '작품 가격'을 '무임승차'한 경매회사가 20~30% 싸게시장에 내놓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비판도 있다.

윤범모 경원대 미대 교수는 "미술관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 미술관이 전시회 등을통해 젊은 작가(뮤지엄 아티스트)를 키워주고 경매시장은 훗날 이 작가의 작품을 상품화함으로써 전체 미술시장이 풍성해질 수 있다.

현재 20%대에불과한 미술관의 경매 참여율도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경매사 김순웅씨

"박수근작품의 가격이 계속 올라갈 때 여러 손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좋은 작품을 소장하려는 애호가들의 열정 같은 것을느꼈죠. 딸을 좋은 집에 시집 보내야 한다는 부모의 심정으로 경매를 진행했고, 그 결과 작품이 제대로 대접을 받은 것 같아 매우 기쁩니다."

고 박수근 화백의 '앉아있는 여인'이 국내 현대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지난 달 27일 경매사 김순웅(48)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은행 자금본부장에서 ㈜서울옥션의 대표이사 겸 경매사로 변신한 지 불과 6개월.

낙찰가를 최종 결정하는 심판관으로서 그는 "자신이미술품에서 받은 감동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경매사의 첫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4월 겸재 정선의 '노송영지'가 7억 원에 팔렸을 때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말을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조선 최고의 화가에 대한 대접이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1,000억 원을 넘는 고흐의 작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안 하면서 왜 국내 작품만 이상한 눈으로 봅니까. 18세기에 그린 작품의 보관료만 해도 그 정도는 될 것입니다."

경매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고객층부터 두터워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래야 젊은 컬렉터를 겨냥한 신진ㆍ무명 작가의 작품도 경매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향락ㆍ소비문화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품을 구입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영원히 '소유'하는기분이 어떤 것인지 직접 느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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