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붕괴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놓고 국내외 세력들의 각축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반(反)탈레반 세력들은 1일 로마에서 모여 모하메드 자히르 샤(86) 전 국왕이 제시한 과도정부 구성계획에 합의했다.이들은 성명에서 “임시기구인‘아프간 국민통일 최고회의’를 설립한 뒤 (추후 전통적인 국민대표회의인) ‘로야지르가’를 소집, 국가수반과 과도정부 각료를 선출키로 했다”며 미국의 지원을 호소했다.
2주 이내에 로마에서 열릴 예정인 최고회의에는 아프간 반군 북부동맹 대표들과 자히르 샤는 물론, 탈레반에서 반군 쪽으로 이탈한 일부 사령관, 반탈레반 정치인 등 120명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도 새 정권의 형태가 공화제가 될 것이냐 왕정이 될 것이냐, 누가 얼마나 지분을 차지할 것이냐는 등의 문제에 대해선 여전히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미국을 위시해서 러시아, 아프간 접경국인 파키스탄,이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인도 등 주변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북부동맹을 활용하면서도 아직 특정 정파의 집권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러시아는 최근 6~7년간 반군에 무기를 공급해온 데 이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타지키스탄을 통한 지원을 대폭 증강하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침투를 우려하는 이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등도 비슷한 입장이다. 특히 인도는 파키스탄과 미국이 지나치게 밀착하는데 대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역시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분쟁 등을 고려할 때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아프간을 우방으로 묶어두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와 입술의 관계를 유지해온 탈레반을 하루 아침에 내버릴 수 없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탈레반을 최고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 등 강경파를 제외한 온건파로 대체하려는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아프간의 미래를 둘러싼 열강과 아프간 여러 정파간 합종연횡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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