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7일 아침, 하와이진주만에서는 일본의 공습 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조지 부시 대통령과 콜린 파월 합창의장이 진주만을 응시하고 있었다.이때 거대한 순양함한 척이 바다를 가르며 고동을 울렸고, 하얀 유니폼을 입은 수천명의 수병이 갑판에 한 줄로 도열하여 경례를 했다.
진주만에 정박 중이었던 전설의 ‘미주리’함이 퇴역하고 새로운 군함이 선보이는 의식이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순양함은 한국 전쟁의 ‘초신퓨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그 이름을 ‘초신’으로 명명했습니다.”
■ 엊그제 국정감사에서 이 군함의 이름문제가 나왔다. 국방위원회가 아닌 법사위원회에서였다. 조순형(趙舜衡) 의원이 군법회의 감사에서 “미국이 한국전쟁을 기념하여 이지스 순양함에 일본식 이름을 붙였는데, 국가적 자존심과 역사적 진실 차원에서 고쳐 부르도록 미국에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듣고 보니 옳은 지적이다.
그동안 이 문제를 지적하고 미국측에 시정을 요구한 것은 극소수 학계인사와 재미동포였지 정부가 아니었다.
■초신퓨(Chosin Few)는 북한 함경남도에 있는 장진(長津)호의 일본어 표기에서 나온 영어 발음이다.
1951년 12월 미 해병1사단은 이 험준한 협곡에서 중공군의 포위망에 걸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죽음의 철수를 했다.
한국전 10대 전투 중 하나였다. 당시 변변한 지도 하나 없었기에 미군은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의 지명을 영어로 표기해서 썼다.
미국에는 그 전투에 참가했던 노해병들의 ‘초신퓨’라는 재향군인단체를 만들어 활동해 왔다.
■초신퓨가 본격 활동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그들은 실종미군과 전사자 유해를 돌려받기 위해 미국정부에 로비를 벌였고 캐나다에서 북한고위장성과 접촉했다.
미국에 수많은 외교관과 무관이 나갔건만 이렇게 알려진 ‘초신퓨’의 표기문제를 흘려 넘겼다. 그래서 이제는 고유명사로 고착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웨스트포인트, 즉 미 육군사관학교에는 ‘대전’ ‘인천’이라는 우리 지명을 건물이름에 붙여 한국전쟁 중 중요한 전투를 기념하고 있다.
의지만 있다면 초신퓨의 재향군인회를 움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일본과는 상관없는 장진호에 생사를 맡겼던 사람들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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