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이 무이자로 빌려준 150만원으로 우선 아이들 학비 등 급한 불부터 껐지만 당장 다음달 생활비가 걱정입니다. 회사측이 희망퇴직을 받는 상황에서 추석을 지낼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파업으로 3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한 울산의 30대 노조원)추석 귀향을 앞둔 근로자들은 우울하다. 장기불황 속에 체임은 늘고 상여금을 지급하는 공장도 몇몇에 불과하다.
더구나 과잉생산에 따른 쌀값 폭락이 눈 앞에 다가온 고향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어 모처럼 귀향하는 아들 딸을 편하게 맞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일감이 없어 길어진 추석휴무일이 근로자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다.
경기 반월공단 피혁공장에서 일하는 박한이(19)양은 한달 전부터 추석상여금 80만원을 받으면 살 선물목록을 만들어 두고 고향에서 노모 볼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그런데 사흘 전 갑자기 반장 언니가 “회사가 어려워져 상여금을 못준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전했다.
부산 사상공단의 한 창고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장안억(38)씨는 상여금도 나오지 않고 월급도 20%나 깎였지만 3년만에 추석 귀성길에 오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며칠 전 강원 원주시 고향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는 “아버지가 쌀 값 때문에 매일 술만 마신다”며 속 끓는 소리를 했다. 장씨는 “모처럼 고향에 가서 어려운 세상살이를 잠시나마 잊고 싶었는데 고향에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경인지방노동청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까지 경기ㆍ인천지역 체불임금은 3,90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나 늘었다.
다른 지역 공단들의 사정도 이와 비슷해 대구ㆍ경북 지역 체불은 978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226% 증가했고, 대전은 91억원으로 38%, 광주ㆍ전남 61억원 54%, 경남 66억원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상여금은 크게 줄었다. 경기 반월ㆍ시화공단의 상여금 지급업체는 80.6%로 지난해보다 4.4%포인트 감소했고 구미공단의 경우 입주업체의 76%가 추석상여금을 지급, 지난해의 83%보다 줄었다.
대구의 한 섬유업체 대표는 “수출물량이 대폭 줄어 직기를 절반 이상 가동하지 못하는 업체가 상당수”라며 “추석을 앞두고 체임은 늘고 상여금은 줄어 근로자들 볼 낯이 없지만 어쩌겠느냐”며고개를 떨구었다.
부산=김창배기자
kimcb@hk.co.kr
대구=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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