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북측이 쌀지원을 요청한 가운데, 대북 쌀 지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20일 쌀 200만섬 지원을 정부측에 제안, 여야 합의 아래쌀 지원이 쉽게 성사되는 분위기였으나 한나라당 일각에서 ‘퍼주기’라며 반발하고 나서 난항이 예상된다.“식량난으로 고통받는 북측에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해야한다”는 대북 지원론에 “분배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쌀 지원은 북한 체제만 연장시켜 주는 꼴”이라는 반대론이 맞서고 있다.
■찬성 : 조성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집행위원장
5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아동보호아태 각료급회의에서 북측대표 최수헌 외무성 부장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북측은 식량난 등으로 인해 1993년 대비 1999년 복지지표가 현저히감소했다. 평균수명이 73.2세에서 66.8세로 6.4세가 감소했고, 신생아 사망률은 1,000명당 14명에서 22.5명으로 8.4명이 증가했으며,5세 이하 영유아 사망률이 1,000명당 27명에서 48명으로 21명이 증가했다고 한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북쪽의 사정은 공개적으로 발표한 지표의 수치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일부는 북쪽이 올해 자체 생산량 359만톤과 국제지원 100만톤,수입량 50만톤 등을 모두 합해도 100만톤 가량 부족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만섬(30만톤)은 북쪽의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 올해 예상되는 남쪽 재고량은 1,000만섬에 이르며 김동태 농림부 장관 주장대로 700만섬을 적정 재고량으로 친다해도 300만섬 정도 과잉 재고량이 발생한다.지금 거론되고 있는 200만섬(30만톤)은 6,000억원(5억 달러)어치다.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를 10%만 줄여도 년간 8,000억원 정도가 절약된다고 한다.
통일 전 서독의 대동독 연평균 지원액은 32억달러였다. 금강산 경비(각종 시설투자비 포함)를 포함해서 1998년 이후 연평균 대북지원액은 2억 3,000만달러 정도다. 서독과 비교하여 14분의 1 수준이다.
남쪽의 경제력, 정치상황, 국민 정서 등이 고려되어 그다지 ‘퍼주고’ 있지 못한 것이다. 6,000억원은 정부가 국내 저소득층의 기초생활 보장을 위해 지출하는 ‘생산적 복지예산’(7조 17억원)의 약 12분의 1 수준이고, 국방비 예산(14조 4,774억원)의 약 4% 정도다.
쌀의 장기 저장에 따른 자연유실이 10%선을 넘나들고 연간 관리비용이 1,000억원이 넘는다는 점을 접어두더라도 우리 농민의 부담을 덜고, 북한 식량난에 도움을 주며, 화해협력정책을 지속시킬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그 비용은 매우 싸다.
지원방식은 지난해처럼 장기저리 차관형식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쌀 값이 국제 시세에 비해 5~7배 비싸다는 점을 감안하여 여야가 합의만 한다면 무상지원이 가장 바람직하다.
분배 투명성은 이미 국제원조기관들이북한 190여개 시ㆍ군에 주재원을 두고 식량분배 상황을 감시해왔고, 군사용으로 전용된 사례가 한 건도 없었다는 공식결과보도도 있었다. ‘인민’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상층부와 군부에 분배를 집중한다면 그건 스스로 체제의 밑등을 갉아먹는 짓이다.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반대 : 정용석 단국대 교수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은 인도적으로 마다할 수 없지만, 반드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전제 조건이 따라야만 보내준 쌀이 정말 굶주리는 북한 동포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않고 ‘통일’ ‘민족’ ‘냉전체제 해체’ ‘인도주의’ 등의 명분 아래 무조건 쌀부터 보내주게 되면, 남한 주민들이 어려운 생활형편 속에서도 모아준 쌀이 엉뚱한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첫째, 대북 쌀 지원은 북송된 쌀들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전달되는지, 군사용으로 전용되지는 않는지, 충성심을 얻기 위한 고위 간부들의 선물용으로 쓰이지는 않는지 등 배분과정의 투명성과 검증이 전제되어야 한다.
대북 식량지원에 나섰던 여러 국제 자선 단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원된 식량이 군과 관에만 배급되고 있다고 불평해왔으며 일부는 거기에 항의해 철수까지 했다.
이 사실을 남한이 뻔히 알고 있는 한 전달과정에 대한 투명성과 검증장치를 확보하지 않은 채 쌀을 보내 줄수는 없다. 정부의 검증장치 없는 쌀 지원은 배곯는 북한동포를 위한 게 아니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게 아닌가 의심케한다.
둘째, 정부의 쌀 지원은 가능한 한식량증산을 위한 북한의 농업체계 개혁을 전제해야 한다. 물론 국제사회 또는 국내 자선 단체들의 경우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식량을 보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차원 지원의 경우 북한의 근본적인 식량증산 개혁의 전제조건 없이 쌀만 지원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식량부족을 매년 되풀이 하게 만드는결과가 된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흐 마르티아센 교수는 만성 고질적 식량난은 관련 정부의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고 역설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부족도 김정일 1인 우상화를 위한밀교집단적인 폐쇄체제에서 연유한다.
그런 이상스러운 정권과 농업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개혁을 전제하지 않는 정부차원의 원조는 북한의 근원적개혁의지를 약화시켜 식량난을 더욱 악화시킬 수도 있다.
셋째, 남한이 잉여분의 쌀 재고량을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북한에 200만섬을 지원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이것도 신중치 못한 발상이다. 쌀 과잉생산에 대한 근본대책은 농업정책 개혁자체에서 찾아야지 결코 ‘대북 퍼주기’로 해소할 수는 없으며 남한의 엄청난 재정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점에 더욱 그렇다.
넷째, 남한에도 굶주리는 어린이와 노인들이 적지 않다. 북한은 6ㆍ25 동족상잔의 남침에 이어 지금도 연방제통일을 외쳐대고 있다. 정부는 그런 체제 주민들 보다는 우리 국민들의 굶주림부터 해소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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