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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추석은 그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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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추석은 그렇게 온다

입력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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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신소설과 현대소설의 여명기에 걸쳐 활동한 민태원(閔泰瑗)은 특히 산문에 능했다. 그중 하나인 ‘청춘예찬’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오랫동안 수록되어 모르는 이가 드물다.“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보라…”

외람되나마 청춘을 추석으로 바꾸면 어떨까.

“추석!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괜찮을 듯하다. 그러나 두 번째 구절은 아무래도 좀 튄다. 추석은 장년을 지나 노년을 바라보는 층에게 한층 절실하고 뻐근한 명절이기 때문이다. “추석! 그대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고향 하늘을 생각해 보라. 헤어진 사람들이 그리울지니…” 정도로 누그러뜨리는 게 좋을 성부르다.

형편 따라 각기 감회가 다르겠으나 추석은 그렇게 온다. 꽉 찬 보름달만큼 마음이 넉넉한가 하면, 지금은 곁에 없는 누군가의 결락이 아쉬울 수도 있다. 덮어놓고 명절이 좋은 어린 것들의 희희낙락 재잘거림에 고속도로의 지겨운 정체쯤 견딜 만하리라.

산소를 오가는 길목마다 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코스모스가 새삼 반갑고, 산야에 가득 널린 오곡백과에 배가 먼저 부를 것이다. 하다가도 선고(先考) 앞에서 생각하는 자신의 오늘이라든가 갈수록 태산인 세상 일에 마음 졸이지 말란 법 없다.

추석은 어떻든 골고루 무던한 명절이다. 빈 곳을 채워 주고, 떠나기보다는 만남에 더 치중하는 민족적 대이벤트다. 들판의 풍요와, 공활한 가을 하늘의 달과, 사람의 물결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벌이는 천인(天人) 일체의 향연이다. 고단한 삶에 잠시나마 휴지부를 찍고 잃었던 기력을 북돋우는 축제로 제격이다.

이런 측면에서 설날보다 덜 인위적이다. 자연과 친화력을 넓히는 계기로 다시 없다. 설날은 어쩐지 사무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바로 전 섣달그믐의 채귀(債鬼)닦달이랄지 결산의 숨가쁨에서 채 놓여나기도 전에 갖춰야 하는 근엄한 표정이 우선 그렇다. 저마다 일년지계를 세우고 신년하례식을 올리는 형식이 불필요하기 때문에도 추석은 호모루덴스(유희인간)의 본래 모습에 가깝다.

송편이 갖는 가족통합의 의미 또한 절묘하다. 누가 누가 더 예쁘게 빚는가를 겨루는 자리에서 안노인들의 실력 발휘가 모처럼 돋보인다. 며느리나 딸의 서툰 솜씨를 지휘 감독하기 바쁘다. 손자 손녀가 만든 ‘개떡’ 모양에 자글자글 웃음꽃을 피우는 것도 이때다. 옛날 옛적의 송편 생김새도 지금 것과 똑같았다. 풍자시인 김삿갓이 읊은 송편시(松餠詩)를 보자.

“손안에서 뱅뱅 돌아가는 모습 새알 같고/ 손끝에서 하나하나 주무르는 모양 백합조개 입술과 비슷하다/ 다 만들어 금반(金盤) 위에 쌓아 올리니 묏부리 천봉이 첩첩이요/ 젓가락으로 집어올리니 반달이 넌즈시 떠오는구나.”

추석이 이처럼 즐겁고 푸근한 날이기는 해도 어쩐지 허허로운 대목이 없지 않다. 분단민족의 안타까움이 무엇보다 절절한 탓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명절이 더욱 비감스러운 경우 또한 많을 터다. 모국에 품을 팔러 온 옌볜동포는 동포대로 오죽할까 싶다. 명암 교차의 여러 현실이 우리 명절에는 그렇게 겹치기 마련이었다

. 찬 여관방에 누워 객수(客愁)를 달래던 예전의 내력과 더불어 늘 겪는 그늘이다. 뿐인가. 경제꼴이 저래서도 어지간히 착잡한 심정으로 이번 추석을 맞이하게 되었다. 뉴욕발 테러 폭풍까지 덮쳐 말이 아니다.

하지만 추석은 어김없이 돌아와 힘을 내라 이른다. 어느 해치고 추석 이전에 큰물 지지 않은 해 드물었다. 그래서도 추석은 크나큰 위로로 다가온다.

부모형제에게 나누어줄 선물 보따리들을 안고 삼삼오오 버스에 오르던 80년 전후 산업 낭자군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한편 마음 저리고 한편 흔감스러운 광경이었다. 나라나 개인 형편이 지금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결코 나을 리 없었던 시절이다. 그렇게 곤경을 뚫고 온 저력을 뜨겁게 기억한다.

최일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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