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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이태희 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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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런 일]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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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 17일은 검찰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진 날이었다. 검찰은 이날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金賢哲)씨를 구속했다. 검찰은 문민정부 이후 여러가지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만들어냈다.혹자는 전두환(全斗煥)ㆍ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을 법정에 세운 12ㆍ12및 5ㆍ18사건을 첫 손가락으로 꼽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죽은 권력’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에게 싸움을 걸었고 승리한 사건은 김현철씨 사건이 아마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이 사건은 수사사령탑을 맡은 심재륜(沈在淪) 대검 중수부장과 ‘드림팀’으로 불렸던 베테랑 검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했다’는 결과보다도 권부에 싸움을 걸었던 이들의 정의감과 용기에 더 박수를 보냈다.

당시 김현철씨는 자신이 구속될 것은 전혀 예상치 않고 있었다. 검찰에 불려와서도 “내가 구속되면 아버님이 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면서 오히려 수사팀을 설득하려 들었다.

훗날 심재륜 당시 중수부장에게들은 수사 비화를 하나 소개한다. 중수부장을 맡기 직전 그의 직책은 인천지검장. 심검사장은 ‘중수부장’을 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권부에선 검찰내 최고의 특수수사통이었던 그에게 이 자리를 맡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보사건 축소수사 의혹으로 검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자 그는 ‘기자회견을 열어 인천지검에서 독자적인 수사를 하겠다고 선언할까’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까지 할 정도의 강골 검사였다. 수사 초기안기부의 한 간부가 심 중수부장을 찾아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수사비에 보태시라”며 슬그머니 두툼한 돈봉투를 내밀었다. 당시 권력 핵심부에선 도무지 심검사장에게 사건을 맡긴 것이 도무지 미덥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떠보려는 의도였으리라.

이미 ‘김현철’을 타깃으로 정해 둔 심 중수부장은 순간 고민했다. 돈을 받으면 발목이 잡히는 것이고 안받으면 노골적인 적의를 보이는 것으로 권부에 경계감을 키워주는 것.

순간 그는 기지를 발휘했다.“감사하지만 수사비 지원은 검찰총장님에게 주시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총장님에게 주는 것은 저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넘어간 것. 며칠 후 이 돈은 검찰총장실을 경유해 수사팀에게 전달됐다.

김현철씨 사건 수사 내내 검찰총장실이 있었던 8층과 중수부장실이 있던 7층간의 냉랭했던 분위기, 청와대와 중수부와의 대립 등도 생생하게 알려질 날이 있으리라.

요즘 정국을 들끓게 만드는‘이용호 게이트’로 검찰은 또다시 한보ㆍ김현철사건 때와 유사한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아직 이 사건이 ‘살아있는’ 권력이 개입된 것으로 볼 증거는 없다.

검찰은 드림팀의 ‘용기’를 기억해야 한다. 용기는 진실을 부른다. 이용호 게이트의 실체가 무엇이든 이를 제대로 파헤치려는 용기를 보인다면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이태희 기자

taehee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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