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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풍경이 있는 우리 술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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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풍경이 있는 우리 술 기행

입력
2001.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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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술이 바로 예술이야, 한 잔 들게나.”주당(酒黨)들의 값싼 술 예찬은 아니다. 시중에 차고 흘러 넘치는, 대량생산 대량유통으로 획일화한이런저런 술이 아니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혀와 코와 눈을 홀리고, 마침내 술과 사람과 하늘을 하나 되게 하는 경지를 빚어냈던 민속주이야기다.

허시명(40)씨의 ‘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은 한반도 곳곳에서 지금도 빚어지고 있는 우리 술 23가지를 찾아 길을 떠난 이야기다.

저자는 바닥을 드러낸 술잔을 자꾸만 아쉬워하는 술꾼이기보다는, 토속주 한 방울이 문자 그대로 맑은 이슬방울처럼 빚어지기까지 땅과 자연, 그곳 사람들의인심도 모두 담아내는 장인의 솜씨를 기록하는 자로서 길을 떠난다.

남쪽으로 진도의 홍주부터 북쪽으로 포천의 이동막걸리까지, 서쪽의 한산 소곡주부터동쪽으로 영월의 신선주까지, 우리 땅 곳곳에 남아있는 술도가와 종자밭이 생생한 100여 컷의 컬러사진으로 소개된다.

400년 진묵대사가 만들었다는전통의 곡차를 빚는 벽암 스님(송화백일주), 여든 나이에도 술 빚을 때만큼은 종갓댁 안주인의 엄격함을 잃지 않는 우리 술 최고의 장인 배영신씨(경주교동법주), 순전히 시집 잘못 와서 술을 빚게 됐다는 임영순씨(청양 둔송구기주), 우리 술의 맥을 찾아 200여 가지의 술을 담갔다는 술의 열정가조정형씨 등 장인들의 이야기가 또한 흥취있다.

애는 버려도 누룩은 못버린다는 심정으로 목숨 걸고 누룩을 딛는다는 누룩마을 이야기,시에서나 나올 법한 술 익는 마을이 실제로 나타난 정경 등 진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도 가득하다.

조선시대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한산 주막에서소곡주를 홀짝이다가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나지 못하고 앉은뱅이가 되어 과거 시험을 놓쳤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앉은뱅이술’이란이름 등 술꾼들에 얽힌 일화도 흥미롭다.

우리 술을 다룬 책은 많이 있었지만 허씨의 이 책은 치밀한 현장 답사와 함께‘규합총서’ ‘제민요술’ 등의 민속학 문헌, 구전자료 등까지 두루 섭렵한 바탕에다 풍류 어린 문체를 더해 빼어난 우리 술 기행문이자 보고서가 됐다.

마침 중추가절, 도연명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우리 술에 취해 세상사의 번잡함을 잠시 잊어보는 것도 좋겠다. ‘가을국화빛이 아름다워/ 이슬 젖은 꽃잎을 따서/ 수심 잊는 술에 띄워 마시니/ 속세 버린 심정 더욱 깊어라/ 술잔 하나로홀로 마시다 취하니/ 빈 술단지와 더불어 쓰러지노라’.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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