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1세기 문화어사전 / 'ㅋㅋㅋ'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1세기 문화어사전 / 'ㅋㅋㅋ'

입력
2001.09.28 00:00
0 0

●정의: 한글 자모의 열한 번째 자음●새 정의: 기분이 좋다는 표현

●용례: “나만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ㅋㅋㅋ….”

혼자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네티즌들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린다. ‘ㅋㅋㅋ’. 한글자음의 열한 번째 글자인 ‘ㅋ’을 연달아 치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어 보자. ‘키읔키읔키읔’이 아니다. ‘크크크’ 정도로 읽어야 ‘ㅋㅋㅋ’의의미에 가장 가깝다.

약간은 엉큼한 생각 속에서 상대를 조금은 비아냥거릴 때 쓰는 표현이다. “너 내가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을 거다. ㅋㅋㅋ….”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이 또 있다. ‘ㅊㅋㅊㅋ’는 의역하면 ‘정말로축하해’ 정도의 의미다. ‘축하축하’를 ‘추카추카’로 표현하던 것이 어느새 모음을 날려버린 채 쓰이고 있다.

“채팅 세대가 사용하는 짧지만 의미있는 표현법으로 이미 일반화했다. 대부분 격의 없는 메일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회사원 노은정(25)씨가 모음을 버린 이유다.

두 개 이상의 자음과 모음이 만나서 한 음절의 글자를 만든다. 한글을 사용하는 가장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이미 온라인 상에서 이런 원칙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세종대왕이 알면 땅을 치고 통탄할 노릇이다.

파괴되는 한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우선 모음을 바꿔 부르는말을 보자. 주로 ‘오’ 모음이 ‘어’ 모음으로 바뀐다.

‘놀자’는 ‘널자’, ‘맘 맞고’는 ‘맘 맞거’로 쓰인다. ‘안녕하세여’,‘안냐세여’ 같이 인사말의 모음 변화도 심하다. 혀짧은 발음도 대유행이다. ‘같이 갈까’는 ‘가티 가까’다.

원래 비틀기에는 통쾌함이 있었다. 억압과 통제에 대한 반발이라는 깊은 뜻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언어의 비틀기는 도가 지나치다.

문제는 언어가 단순한 ‘말의 사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지표다.

가볍고 감각적인 문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젊은 세대 특유의 감수성과 친화력으로 구축된 사이버 영토가 비옥해지는 길은 이쪽이 아니다.

문화평론가 신영수(32)씨는 “언어의 다양한 형태변화가 시대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것은이해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며 “비틀기의 본뜻이 실종되고 해괴한 변종만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웃음은 커녕 짜증만 주는 언어 비틀기라는분석이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글날. 그날 만이라도 ‘비틀기’의 통렬함을 제대로 표현하는 네티즌을 볼 수 있을까?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