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하게 떨리던 손가락이 활시위를 튕기자 바람을 가르는 화살이 150여㎙ 떨어진 산기슭 과녁에 ‘딱’하고 박힌다.“관중(貫中ㆍ과녁에 명중)!”
서울 종로구 사직동 인왕산 자락에 자리잡은 ‘국궁의 본산’ 황학정(黃鶴亭). 1순(一巡ㆍ화살 5발)을 함께 쏜 나기영(48)씨와 최재원(21)씨는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고요한 사대위에서 서로 정중히 고개숙여 인사를 나눈다.
“오늘은 관중이 어렵네요. 아직 마음을곧게 살피지 못한 것 같습니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공무원으로 일하던 나씨는 궁도 때문에 7년간의 공직 생활을 미련없이 정리했다. 우연히 이곳을지나다 “심금을 울리는 관중소리에 매료돼 궁도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나씨는 이제 궁도장비 보급을 새 직업으로 삼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최씨는 “상급생이 권해서 궁도를 시작했다”며 “몸이 아파서 휴학 중이지만 궁도를 3개월 배우고 나니 많이 건강해졌다”고 말한다. 특히 “궁도덕에 정신수양은 물론 자연스레 예절이 몸에 밴다”며 궁도의 장점을 설명했다.
궁도를 즐기는 동호인들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다양하다. 몇 개월만 배우면 어린이나 아흔이 넘은 할아버지 모두 100㎙ 떨어진 과녁을 너끈히 맞출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엔 호주 대사관직원을 비롯한 10여명의 외국인도 국궁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활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몸이근질거렸다. “한번만 쏴 볼 수 없을까요?” “초보자는 사대에 올라설 수 없습니다. 자세만을 익혀야 해요.” 무작정 활시위를 당기다 얼굴과 팔에 상처를 입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도 몇번을 조른 끝에 사대에 섰다. 화살없이 활만 잡아당겼지만 부들부들 팔이 절로 떤다.
“흉허복실(胸虛腹實:가슴을 비우고 배에 힘을 준다) 해야 화살을 멀리 날릴 수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이선중(79) 전 법무부장관이 집궁 자세를 교정해 준다. 40년 동안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이 전장관은 “발사순간까지 전신을 긴장해야 하는 궁도 덕에 아직 병치레 한번 없다”고 말한다.
이곳에 모인 동호인들은 모두 초지일관(初志一貫)을 위해 활시위를 당긴다. 5,000년 역사를 이어온 궁도를 하루아침에 배우려는 생각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궁도 배우기
현재 국내에 궁도를 즐기는 동호인은 대략 3만명. 전국적으로 320여곳의 궁도장이 있고 수도권 보다는 지방에서 성행하고 있다.
조준기 없이 145㎙ 떨어진 과녁을 맞추는 궁도를 즐기려면처음 2~3개월 동안 기본자세 연습에만 주력해야 한다. 입회비는 10만원. 월회비는 2~3만원 수준으로 저렴하게 평생스포츠로 즐길 수 있다.
기량보다는 심성을 더욱 중시 여기는 것도 궁도만의 특색. 다음달 7일 황학정에서 열리는 전통 장안편사(便射)놀이를 직접 지켜보는 것도 궁도의 멋을 만끽할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문의 대한궁도협회(kungdo.sports.or.kr) (02)420-4261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