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 동안의 전국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집계를 살펴보다가 “어이 책이 왜…” 하는 호기심이 가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미국 작가 F. 스코트 피츠제럴드(1896~1940)의1925년작 소설 ‘위대한 개츠비’였습니다. 물론 널리알려진,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새삼스럽게 이 소설이 서울시내 대형서점의 베스트 순위에 오른 것은 물론 부산 한 대형서점의 경우 청소년 부문 1위를기록하지 않았겠습니까.
서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역시, 이유가 있더군요. 얼마 전 TV의 한퀴즈 프로그램에서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문장을 들려주고 작품명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는겁니다. 이후 갑작스럽게 이 책이 특히 학생들이 많이 찾는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거지요.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최근에 기억나는 것만 해도 ‘독일인의사랑’이란 책이 TV연속극에서 주인공이 늘상 끼고 읽는 책으로 나오자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있습니다.
너무도 잘 알려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휴대폰 회사광고에 등장하면서 그 판매 부수가 한층 급격히 올라갔다지요.
TV와 광고가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이처럼 큽니다.얼마 전 본격 독서 프로그램으로 출범한 ‘TV, 책을 말하다’에 소개된 책들도 마찬가지여서, 출판사들은 이 프로그램에 자사 책을 소개하려 무진 애를 쓰기도 한답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단지 영상매체의 힘을 인정하고 지나치기에는 뭔가허전합니다. 책을 통해서, 또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는 과정 자체를 ‘지적 훈련’으로해서, 세상을 알아나가야 할 청소년 시절 독서의 기본 형태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책마저도 유행과 패션으로전락한 거지요. 물론 책은 유행상품일 수 있지만 거기 담긴 생각과 지혜는 유행일 수 없습니다.
추석 연휴에 성묘 가는 것조차 ‘사치’로여겨질 만큼 입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 그나마 짬을 내야 할 그들의 독서 경험에 끼어드는 복병인 유행으로서의 책 읽기도 걱정입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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