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학자 디미트리 사이메스는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간 공산정권 지원을 위해 무력 개입한 직후, ‘데탕트의 죽음’(The Death of Detente)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분야 권위자인 그는 소련의 침공에 미국의 냉전 전략가들은 내심 환호했다고 말했다.아프간을 소련의 힘을 소진 시킬 냉전의 마지막 전장(戰場)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련이 스스로 개입하지 않았으면 이를 유도해야 할 정도의 호재(好材)로 반겼다는 풀이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은 소련군이 무자헤딘의 항전에 시달리다 10년 만에 자진 철수하고, 소련 붕괴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호재였음이 입증됐다.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나, 이번에는 무자헤딘을 지원했던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임박했다. 이 기묘한 역사의 변전을 어떻게 이해할지 난감하다.
겉만 보면 사태의 핵심은 가공할 뉴욕 테러와 아프간의 테러 지원 혐의다. 그러나 미국이 어떤 항변과 이론(異論)도 무시한 채 대규모 전쟁을감행하는 명분을 테러 응징 차원에서만 이해하기는 석연치 않다.
테러 직후 대뜸 빈 라덴과 아프간을 지목한 미국이 사소한 살인 사건보다 빈약한 증거를 열거하면서 테러범 색출보다 아프간 장악에 목적을 둔 듯한 모습은 더욱 그렇다.
이런 의문을 푸는 실마리를 아프간의 지정학적 위치와 역사적 경험에서 찾는 것은 의미 있다. 파키스탄과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등에 둘러 싸인 척박한 땅 아프간은 인도,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과 서구 열강의 세력 균형 게임에 유용한 완충 국가로 존립해 왔다.
또 그 대가로 정치 경제적 지원에 의지해 국가 명맥을 이어왔다. 소련군 철수와 냉전 종식 뒤 이 같은 열강의 이해를 조정하는 체제는 새로 마련되지 않았다. 주변국은 오히려 평화 정착보다 내전을 부추겨 아프간의 고난은 이어졌다.
이런 과도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는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이 적대국은 물론이고 오랜 후원국에도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이 된 사실이다. 탈레반의 내전 승리를 도운 것은 러시아와 인도, 이란을 견제하려는 파키스탄과 미국이다.
그러나 혁명적 방식으로 정권과 국가 기반을 확립하려는 탈레반의 과격정책은 과거 이란의 회교 혁명처럼 주변 이슬람 국가에 위험한 모델이 될 우려가 커졌다. 이란 혁명 열기를 격리한 것과 같은 대응이 필요해진 것이다.
여기에 아프간을 둘러싼 중앙 아시아 지역의 정치 경제적 중요성이 21 세기가 진행될수록 한층 커질 것이란 분석은 주목된다. 중앙 아시아는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수송로로 옛 실크 로드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고, 아프간은 그 요충지의 지위를 되찾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 전략적 지역을 더 이상 내전과 통제 불능 상태로 방치할 때는 지난 것이다.
미국의 국제 에너지 전략과 관련해 아프간이 핵심 지역으로 떠올랐다는 지적은 한층 의미 있다. 중앙 아시아의 석유 및 천연 가스 매장량은 전 세계 매장량의 10 % 미만이지만, 아시아 지역 에너지 수급에 장기적으로 큰 비중을 가질 것이란 예상이다.
이 때문에 중앙 아시아에서 아프간을거쳐 파키스탄에 이르는 파이프 라인 건설을 놓고 미국 텍사스 유노콜사와 일본 이토추, 한국 현대건설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과 아르헨티나 러시아, 사우디가 합작한 컨소시엄이 치열하게 경합했다.
연간 이익 수백억 달러로 추정되는 이 파이프 라인 통과 수수료로 미국 컨소시엄은 연간 1억 달러정도를 탈레반 측에 제안했으나, 사우디와 가까운 탈레반의 거부로 유보된 상태다.
미국의 대 테러 십자군 전쟁에 숨겨진 전략적 의도는 이미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냉전 종식 뒤 격변하는 유럽과 중동 정세에 몰두하느라보류했던 중앙 아시아의 본격 경략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적 이득을 챙길 나라는 많겠지만, 숱한 희생과 평화 질서파괴는 ‘데탕트의 죽음’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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