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테러 대전 / 서방기자들이 전하는 아프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테러 대전 / 서방기자들이 전하는 아프간

입력
2001.09.27 00:00
0 0

미국의 공격을 목전에 둔 아프가니스탄에는 전쟁을 피하려는 탈출 행렬이 매일 줄을 잇고 있다. 탈레반 군의 병사들이 대미 항전의지를 다지는 가운데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강제징집이 이루어 지고 있으나 일반국민들의 삶은부패와 피폐 속에 찌들어 오기만 했음을 현지에서 활동 중인 서방 기자들은 전하고 있다.25일 오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0㎞ 떨어진 나와바드.

카불로 이어진 구(舊)도로 쪽에서 도요타 4륜구동 픽업트럭이 매캐한 흙먼지를 매달고 마을로 달려든다. 남자,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30여명은 족히 탄 것 같다. 이어 작은 지프 한 대가 16명을 싣고 도착했다. 4명은 예비 타이어를 붙든 채 뒤에 매달려 있었다. 남루한 옷차림에 마른 먼지를 뒤집어 쓴 이들의 모습에서 공포와 피로가 함께 묻어났다.

“카불은 이제 텅 비었어요.”조금 전 탈출해온 모로존(25)씨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트럭을 같이 타고 온 아흐메드 칼리드씨는 강제징집에 나선 경찰을 피해왔다고 말했다. “카불은지금 ‘산적들’ 천지입니다. 먹을 것과 땔감은바닥나고, 이젠 더 견딜 수 없어요. 탈레반이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 질렸습니다.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산적’은 대부분 사람 사냥에 나선 현지 경찰을 지칭한다. 이들은 도요타 픽업을 타고 다니면서 서구의 음악을 듣거나 사진을 찍거나 두건을 쓰지 않는 등 (탈레반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금령을 어긴 사람들을 단속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경찰은 납치한 시민을 풀어주는 대가로 종종 20만 아프가니(약3달러) 정도의 ‘거금’을 요구하곤 한다.

현지인들의 반감을 말해주듯 카불 남쪽 파크티아 지역에서는 탈레반 민병대가 산악의 진지로 철수한 뒤 주민들이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결혼식을 하는 등 들뜬 분위기가 됐다고 파키스탄 뉴스데일리가 보도하기도 했다.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무스타파씨는 “탈레반 정권이 주는 혜택은 더 이상 느낄수 없다. 그들은 전쟁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재건할 수 없다. 가뭄에 농작물은 말라가고 아이들은 교육도 못받는다”고MSNBC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나와바드에서 북쪽으로 5km 떨어진 판지쉬르 계곡지역은 이미 북부동맹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압둘라 압둘라 북부동맹 외무부장관은 헬기에 동승한 뉴욕타임스 기자에게“미국의 공격 소식에 반군 전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고 전했다.

한편판지쉬르에서 동쪽으로 한참 떨어진 탈레반 치하 동부 농촌 지역 일대는 옥수수이 가뭄으로 누렇게 타들어가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요즘 소총을 멘주민들의 모습이 부쩍 눈에 띈다. 탈레반이 전쟁이 임박하자 무기휴대 금지령을 풀고 총을 나눠줬기 때문이다.

대부분 러시아제 AK47 소총이다.12~14살 짜리 소년들도 어깨에 총을 메고 다니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주민들은 라디오 주변에 모여 불안과 긴장을 해소하곤 한다. 이곳에서 라디오는외부 소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밤이 되자 남쪽 멀리 카불 하늘에 불꽃놀이 같은 섬광이 점점이 번쩍였다.북부동맹이 공습과 함께 포격을 가하는 모양이다.

아프간의 전쟁은 이렇게 한발한발 다가오고 있었다.

이광일기자

ki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