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호게이트’에 등장하는 정부기관들의 면면과 의혹을 보면서, 우리는 분노와 좌절을 넘어 허무함을 느낀다.이 정부가 외쳐온 정화니 개혁이니 감독 시스템이니 하는 것의 실체가 진짜로 있기나 했던 것인지 근본적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일개 기업의스캔들에 소위 경제권력기관들이 대거 출연하는 총체적 부패 드라마에 도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것은 비단 우리만의 심사가 아닐 것이다.
먼저 금감원이 취한 일련의조치가 의문 투성이다. 주가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처리가 불투명했던 것은 말할 나위 없고 해외 전환사채 발행 및 유통과 관련해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전환사채의 개인 지분한도(5%) 공시의무 위반에 대해서도 사실파악을 못해 뒷짐을 지고 있었다니 이런 해명을 액면그대로 믿어줘야 하는 것인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이씨측전환사채를 인수해 발행 및 유통과정에 개입했던 것도 더러운 냄새를 피운다.
수백억원대의 해외 전환사채를 편법으로 양수 양도하는 위험한 거래행위가 그들 말 대로 단순히 이윤의 관점에서 빚어진 일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대규모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 회계장부를 조작한 데 대해 솜방망이 처벌로 그친 국세청 조치도 일반적 세무관행과 동떨어져 의구심을 낳기에 족하다.
이밖에 담보가치가 약한 주식을받고 거액의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나, 이씨의 케이블 방송사에 경마중계권을내준 마사회,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이씨 띄우기’ 프로그램을 편성한공영방송사의 행태 등 무수한 기관들이 여기에 실타래 처럼 꼬여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냥 천연덕스럽기만하다. 규정이니 단속의 한계니 앵무새처럼 되뇌며 면피에 골몰하는 이들의 추한 모습에서 공적 책임의 총체적 실종상황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치권력의 비호와 압력 여부를 따지는 것 만큼이나 이들 일선 기관의 범죄 여부를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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