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정한 '깡패국가(Rogue States)'의 대상과 선정기준에 급격한 변화가 올 조짐이다.이 같은 변화는 테러 사건이후 보복 전쟁에 동참할 각국들과의 반(反) 테러 국제연합 체제 구축 과정에서 수반되는 것으로 나타나 향후 미국의 대외정책 전개에도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는 최근 며칠간의 정책전환에서 깡패국가들이나 인권 침해 등 각종 이유로 정치ㆍ경제적 제재를 가해왔던 문제 국가들에 대해 과거의 행적을 불문에 부친 채 이번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입장을 기준으로 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시 대통령은 20일 의회연설에서 '테러와 반 테러국가'라는 이분법으로 '적과 동지'를 구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반 테러 국제연합을 구축하기위한 방편이지만 미국이 앞으로 추진할 외교정책의 방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22일 1998년 핵실험을 이유로 인도와 파키스탄에 가했던 경제제재를 해제했으며, 또 아프간에 대한 군사 작전 기지를 제공한 데 대한 대가로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제재해제와 경제지원을 약속한 상태다.
부시 대통령은 24일 이란, 시리아 등 이른바 '테러 지원국들'에 대한 제제 완화도 의회에 요청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리비아, 쿠바, 북한 등 7개국을 테러 지원국 리스트에 올려 놓았다.
미국은 이들 국가 중 쿠바에게 지난 주 국무부 고위관리를 워싱턴 주재 쿠바 외교대표부에 보내 테러 관련 정보제공을 요청하는 등 화해제스처를 보냈다. 또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은 알라크 수단 외무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반테러 연합에 대한 지지를 확약 받았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의 깡패국가 리스트에는 북한과 이라크 만이 남게 된다. 두 나라 중 이라크에 대해서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미 관리들이 테러의 배후 지원국으로 공격 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유독 북한에 대해서만 이렇다 할 미국의 평가가 아직 없는 셈이어서 주목된다. 테러 전쟁 중 북한과의 관계 설정은 북미관계나 남북관계의 맥락 속에서 짜여질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서 테러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변화가 얼마나 근본적이고,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인지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는 24일 "전시상태를 맞아 부시 정부의 외교정책이 일시적인 변화를 보인 것인지 여부는 앞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부시 정부의 이 같은 노선 수정이 미국의 국익과 상황에 따라 일방적이고 편의주의적으로 국제질서를 짜려는 태도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일부 인권 단체들은 미국이 내세운 테러와의 전쟁은 결국 인권을 무시해도 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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