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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팍스 아메리카나

입력
2001.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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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는 현대사뿐이다. 고대사나 중세사는 없다. 달리 보면 이민국가인 미국의 역사는 모든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문화가 섞여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에서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그리고 태평양 등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화전통이 합쳐졌다. 그러나 미국의 세계정책을 결정하는 중심은 유럽의 가치관이다.미국 연수 때의 일이다. 미국에서 전문교육을 받는 유학생들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물었다. ‘도대체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최강대국 미국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대답은 간단했다. “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작)‘ 속의 로마가 바로 미국이지요.”

워싱턴에 세워진 공공건물을 보면 무언가 낯이 익다. 로마식 건축 때문이다. 우람한 기둥들이 받치고있는 지붕은 돔 형태를 이루고 있다. 백악관을 비롯해서 국회의사당 박물관 도서관 기념관 등은 겉모습이 로마 양식을 따랐다. 흰 대리석과 회백색 사암이 뿜어내는 장엄한 건축미는 지중해를 압도한 패권국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대 지중해 세계는 로마의 패권 아래서 안정을 누렸다. ‘로마에 의한 평화’라고 번역되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B.C. 1세기 말 제정(帝政)을 수립한 아우구스투스때부터 5현제(五賢帝)까지 약 200년간 계속되었다. 이 시기는 로마에 도전하는 이민족(異民族)의 침입도 끊겼으며, 해적도 퇴치되어 무역이 활발했고,제국 내의 각 도시들이 번창해갔다.

오늘날은 부정할 수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영도 아래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질서 속에 편입되어 국제정치를 비롯 경제 문화의 모든 흐름이 펼쳐지고 있다. 사상 유례없는 생산력과 정보화사회로의 전환도 그 질서 속에 진행된다.

팍스 로마나와 팍스 아메리카나는 서로 비교되지만 한편으론 너무 다르다. 세계의 규모와 교통 통신사정, 그리고 지식축적 등 모두가 다르다. 로마제국은 그들의 지도력에 도전하는 세력을 철저히 응징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왕조를 멸망시키거나 영토를 빼앗았다. 심지어 유태인의 경우처럼 외지추방도 강행했다. 오늘날 서구 동구 터키 북아프리카 등지는 저항을 포기하고 로마의 평화를 받아들였다.

지금 미국은 테러공격으로 치명적 손상을 받았다. 위신은 말할 것도 없고 인명과 물질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 섣불리 응징할 수도 없는 분위기이다. 전 세계인이 TV에서 동시에 목격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격한 미국이 응징을 거둬들일 것 같지는 않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래를 위해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도록 본보기를 보여야하기 때문이다.

그 원인이 로마인이 남긴 숙제를 다루는 미국의 중동정책인 것을 생각하면 기이하기도 하다. 유태인들은 이차대전 후 그들의 신에게 ‘약속받은 땅’에 돌아왔다. 2000년 전에 사라진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땅을 빼앗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납득할 수 없었다. 하나 전쟁마다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에 지고 말았다.

아랍인이 볼 때 팍스 아메리카나는 유태인의 생존권만 앞세운 질서이다. 이젠 논리가 통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반세기를 넘긴 투쟁의 결과 서로 부모와 자식을 죽인 원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모든 것에 앞서는 증오만 남아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는 원수’들은 각각 다른 종교를 배경으로 결사 항전을 부르짖는다. 더욱이 미국은 이슬람문화를 이해하려는 자세보다 아랍 땅에서 미국의 이익을 챙기려는 모습만 보여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이란 우산 속에서 모든 국가와 민족이 평화와 번영을 균등하게 누릴 수 있다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평화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증오와 독기로 빚어진 사람들이 속출하면 테러와 응징의 악순환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팍스 로마나의 유산을 팍스 아메리카나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약소국민은 역사의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최성자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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