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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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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

입력
2001.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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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한 소쉬르의 생각을 알기 위해서는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한 서평 열 개를 읽는 것보다 '일반언어학 강의'를 직접 읽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한국의 문화장에 대한 강준만씨의 생각을 아는 데에는 강준만씨에 대한 이런저런 논평을 읽는 것보다 '인물과 사상'을 읽는 것이 지름길이다.그러나 서평을 읽는 것이 무용한 일은 아니다.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남김없이 읽어내는것은 누구에게나 불가능하다. 서평은 대상의 선정을 통해서 읽을 만한 책이 어떠 것인지를 암시한다. 더 나아가서 서평은 어떤 책이 지식의 공간 안에서 어떤 좌표에 있는지를 가늠할수 있게 한다.미국의 문화비평가 마샬 버먼의 '맑스주의의 향연(이후 발행)에 모인 글들은 대체로 서평들이다. 그 논평의 대상은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인 '자본'과 '공산당 선언'에서부터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제럴드 시겔의 '마르크스의 운명'.제임스 빌링턴의 '긴간 정신 속의불',이삭 바벨의 '1920년 일기',마이어 샤피로의 '미술이론과 미술철학'을 거쳐 게오르그 루카치와 발터 벤야민의 전기와 저작물들에 이른다.

'공산당 선언'에서 가장 위대한 모더니스트로서의 마르크스를 발견하고 '자본'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온갖 직업의 사람들 수백 명의 목소리를 읽어내는 버먼의 섬세한 감각은,마르크스를 불신하는 빌링턴을 비판할 때 견고한 이성으로 대치되고,루카치와 벤야민의 생애를 돌아볼 때 연민과 존경으로 번진다. 이 섬세한 좌파는 또 자신을 비판하는 굳은 좌파 페리 앤더슨에게 이렇게 대꾸한다.

"거리의 신호들을 읽지 못하는 한,그 잘난 '자본'을 읽어봐야 아무소용 없어!"

이 책에서 감동적인 부분은 이런 논평들 사이사이에 박힌 저자의 사적 술회들이다. 그는 대학 시절 뉴욕의 '사대륙 서점'에서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초고'를 발견하고 스무 권을 사 친지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입문했다.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버먼은 자신의 계급을 희곡 속의 노동계급에 투가하고,자기 가족을 그 작품의 로먼 일가에 투사하고,"난 여기 뉴욕에 있겟어.그리고 아버지가 못다하신 일을 하고야 말겟어!"라고 말하는 해피 로먼에게 자신을 투사한다. 저자는 노동자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나,노동자의 아들답지 않게 콜럼비아와 옥스퍼드와 하버드에서 공부했지만,결국 노동자의 아들답게 젊은 시절에는 신좌파였고 지금으 '중고 좌파'를 자임하고 있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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