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환사채(CBㆍConvertible Bonds)가 외자 유치 등의 당초 목적과는 달리 기업들의 편법적인 머니게임이나주가조작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특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삼애실업(현 삼애인더스)의편법 해외 전환사채(CB) 발행에 적극 가담한 것에서 드러났듯이 은행ㆍ증권회사들이 오히려 이런 편법거래를 부추기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전문가들은허술한 감독을 틈탄 이 같은 해외자금 조달이 계속될 경우 소액투자자들의 피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 무늬만 해외CB, 실제로는 토종 자금
“명망있는 해외 투자가가 국내의 조그만 회사에 대해 뭘 믿고 투자를 하겠습니까.” 해외 유가증권 투자를 담당하는 A은행 K과장은 국내중소ㆍ벤처기업들의 해외자금 유치는 90% 이상 편법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국내의 경우 유가증권신고서 제출 등 절차가 복잡한데다유통상 신용등급의 제한을 받기 때문.
게다가 해외 유수 투자가들이 명목상 채권 인수에 나섬으로써 ‘우량기업’임을 시장에 과시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도 있다..
편법 외자유치의 첫번째 단계는 유통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해 줄 국내 기관 투자가를물색하는 것. 물론 이를 회사측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되사준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은 기본이다.
기관 투자가는 이 과정에서 매매차익을 얻을 수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채권 매입을 사전 약속하게 된다. 발행시장에서 채권을 잠시 인수할 해외 투자가를 찾는 것은 마지막 단계.
전액 매입을보장한 만큼 잠시 명의를 빌려줄 해외 투자가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기업이 직접 채권을되사주지 않더라도 작전을 통해 주가를 끌어올려 채권 매입 기관에게 엄청난 매매차익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말했다.
전환가격을 발행회사에서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는 것도 해외 CB가 검은 돈의 창구로 활용되는 이유이다.
주가 조작이여의치 않을 땐 전환가격을 낮춰 채권자들에게 시세차익을 안겨줄 수도 있는 것. 실제로 부산지검은 지난해 11월 전환사채를 저가로 발행, 이를 회사임직원들에게 배당한 뒤 되파는 수법으로 54억여원의 시세 차익을 챙긴 혐의로 ㈜맥소프트뱅크 대표 정모씨(37) 등을 구속했다.
■ 합법 투자 가장, 신종 뇌물
해외CB는 신종 뇌물 수단으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CB는 실제로는 가ㆍ차명 거래가 가능,세련된 뇌물로 보면 된다”며 “발행회사측이 상납하는 경우도 있지만 증시가 활황일 땐 정관계 인사들이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G&G그룹 이용호 회장이 지난해 10월 발행한 900만 달러 어치의 삼애인더스 해외CB는 지난 1월 주식으로 전환된 뒤 주가가 2,000원대에서 1만7,000원까지 뜨면서 무려 154억원의 시세 차익이 생겼다.
금융계가 이러한시세차익의 상당부분이 정ㆍ관계 인사에게 뇌물로 흘러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허술한 감독규정
이 같은 편법 자금조달이 암암리에 성행할 수 있는 것은 해외 채권 발행에 대해별다른 감독 규정이 없기 때문.
금융감독원측은 유가증권신고서가 제출돼야 검토를 하겠지만 국내 채권과 달리 해외 채권단은 발행국의 법 적용을 받기때문에 감독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고 있다.
금융감독원 공시심사실 관계자는 “이면 약정이 있다면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아직 검토해본 바 없다”고 말했다.
리젠트증권 김경신(金鏡信)상무는 “해외CB 발행 자체는 외자 유치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실제로는 주가 조작의한 축을 이루며 검은 돈의 증시 유입 창구가 되고 있는 만큼 당국의 감독 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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