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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매는 일단 들면 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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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세상] 매는 일단 들면 엄해야

입력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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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로비, 몸로비로 나라가 온통 시끄럽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요사이 또 다른 로비 사건이 터져 연일 미국 테러사건과 신문지면을 다투고 있다. 부패척결을 가장 중요한 공약 중의 하나로 내세운 국민의 정부에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끊이질 않는 것일까.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이젠 신문 제목만 읽어도 대충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다.니코 틴버겐, 칼 폰 프리쉬 등과 같이 동물행동학이란 학문을 창시했으며 1973년 노벨 생리 및 의학상을 수상한 콘라트 로렌츠는 제자들과 함께 다음과 같은 연구를 했다. 어른 새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갓 태어난 병아리나 거위 새끼들도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의 새들을 보면 몸을 움츠려 숨는다. 누가 숨으라고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알아서 숨는다. 그러나 기러기나 오리 같은 새들이 아무리 가까이 날아다녀도 그리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로렌츠는 이 두 종류의 새들이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만드는 실루엣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음에 주목했다. 맹금류들은 한결같이 목이 짧고 꼬리가 긴 반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새들은 대개 목이 긴 편이다. 그래서 로렌츠는 두꺼운 종이로 한 쪽은 길고 다른 쪽은 짧은 모형을 만들어 어린 새들을 상대로 간단한 실험을 했다.

십자형 모형을 짧은 쪽을 앞으로 해서 날리면 새들이 죄다 숨을 곳을 찾는데 비해, 반대로 긴 쪽이 앞이 되게 하여 날리면 별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는 관찰결과를 얻었다. 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로렌츠는 유전적으로 결정된 간단한 자극신호에 따라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서로 다른 행동반응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런데 얼마 후 로렌츠의 제자가 이 과정을 보다 면밀히 관찰해 보았더니 그렇게 간단한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갓 태어나 아무런 경험이 없는 어린 새끼들은 거의 모든 자극에 일단 숨는 반응을 보였다. 매가 날든 오리가 뜨든 심지어 낙엽이 떨어져도 우선 몸을 숨기고 본다.

하지만 허구한 날 낙엽은 아무리 떨어져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고 오리 같은 새들도 아무리 자주 날아다녀도 자기를 전혀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적어도 그들에게는 더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학습과정을 동물행동학에서는 습관화라 부른다.

일반인들이 너무 아무 곳에나 자주 쓰는 바람에 동물행동학자들은 좀 꺼려하는 개념이지만, 뭔가 위험할 수 있는 자극을 피해 숨는 것은 이른바 ‘본능’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도 삶의 경험을 통해 점점 더 정교하게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반복되긴 해도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자극에 대해서는 신경이 무뎌진다. 우리 모두가 흔히 겪는 “나쁜 습관이 생긴다”거나 “타성이 붙는다”는 일들이 다 이에 속한다.

신경생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기르며 실험을 하는 동물에 군소라는 것이 있다. 일종의 바다달팽이인데 바로 이 동물을 가지고 신경계의 비밀을 캐낸 콜롬비아 대학의 에릭 캔덜교수가 작년에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나와 같은 대학의 한 동료 교수는 바로 그 캔덜 교수로부터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우리 나라 군소의 신경생물학을 연구하여 많은 훌륭한 업적을 내고 있다.

군소는 물 속에 살면서 산소를 얻으려면 몸 윗쪽에 있는 아가미를 열고 입수공으로 물을 빨아들여야 한다. 이 때 누구든 입수공을 건드리면 군소는 황급히 아가미를 닫는다. 위험을 감지하고 자기 방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험적으로 입수공을 괜스레 자주 건드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아가미를 닫지 않는다.

더 이상 위협적인 자극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이 겁없는 군소로 하여금 또 다시 겸손하게 만들려면 그 다음에 입수공을 건드릴 때 흠칫할 정도로 강한 전기자극을 줘야 한다. 그렇게 따끔한 맛을 한번 보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반응을 보인다.

일단 타성이 붙은 습관을 고치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담배나 술을 끊으려 애써본 이라면 잘 알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 사건들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고 있는 듯 싶다.

처음 일이 불거졌을 때에는 금방 누구라도 절단이 날 것처럼 법석을 떨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왠지 흐지부지 돼버리고 마는 걸 너무나 자주 보았다. 궁예가 법봉을 솜으로 만들어 휘둘렀다면 과연 누가 그 앞에서 벌벌 떨었겠는가.

어느 집이나 다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엄마의 잔소리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다가도 아빠의 꾸지람에는 고개를 떨구는 까닭도 엄마와는 매일 같이 들러붙어 있으며 야단도 하도 자주 듣다보니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우리 집은 어쩌다 보니 안사람이 지방에 직장을 갖고 있는 바람에 내가 더 많은 시간을 아들과 함께 보낸다. 자연히 잔소리도 내가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애는 은근히 엄마를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자주 보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실제로는 엄마가 더 물렁팥죽이건만. 매는 결코 가벼이 들지 말아야 하며 일단 들면 호되게 쳐야 한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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