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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마추예프 공연…"神이 내린 열 손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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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마추예프 공연…"神이 내린 열 손각락"

입력
2001.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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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저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모인 청중은 ‘기적’을봤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26)다.박태영의 지휘로 서울시향과 리스트 피아노협주곡 1번, 2번을 협연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는 연주였다.

폭발적 에너지, 경악스런 테크닉, 더없이 풍성하고 섬세한 표현력, 완벽한 음악성과분석력, 숨막히는 카리스마, 거기에 세련된 무대 매너와 유머까지…. 피아니스트에게 필요한모든 것을 갖췄다.

음악평론가 장일범은 “그에겐 건반이 모자라는것 같다. 정말 특별한 천재”라며 흥분했다. 관객은엄청난 충격에 현기증을 느꼈다.

앙코르는 이미 충분히 놀란 관객들을 넉다운시켜 버렸다. 하나는 직접 재편곡한 그리고리 긴스버그 편곡 로시니의 ‘세빌리아의이발사’, 다른 하나는 재즈풍의 즉흥연주였다.

그 현란함이란! 더군다나 직접 만든 음악이라니! 저괴물이 누구지? 흥분한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계속됐다.

연주회 다음날인 20일 오후,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마추예프를 만났다. 194㎝의 훤칠한 키, 잘 생긴 얼굴, 장난기로 반짝이는 눈,부드러운 곱슬머리의 그는 마음이 활짝 열린 유쾌한 젊은이였다.

옐친, 푸틴 등 러시아 지도자 15명 흉내로 배꼽을 잡게 만드는가 하면, 연습할때도 라흐마니노프에서 팝송, 베토벤, 재즈로 쉼 없이 이어 치며 피아노를 갖고 논다.

서울 연주는 세번째다.6년 전 KBS 초청 독주회, 지난 해 서울시향 협연(지휘 요엘 레비. 라흐마니노프 3번)에 이어 이번에는 리스트 협주곡 두 개를 동시에 해치웠다.이 놀라운 피아니스트는 유감스럽게도 공연 주최측의 홍보 실패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

라흐마니노프도 리스트도난곡 중의 난곡. 그런 곡을 어떻게 그토록 쉽게 연주할 수 있는지 놀랍다고 하자 “지난 해 일본에서 하룻밤에 협주곡 네 개를 했다”며 “세 개쯤한꺼번에 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룻밤에 네 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기자에게 “다음에 다시 오면 라흐마니노프 2번, 프로코피에프3번, 차이코프스키 1번의 세 곡을 하고 싶다.

스피바코프(러시아 내셔널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와 함께 오고 싶은데, 이르면 내년 봄이 될 것”이라고했다. “그때 깜짝 놀랄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않았다. 하늘에는 마추예프 별이 떠 있다. 1998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자 러시아 천문대가 거문고자리의 별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땅의스타가 진짜 하늘의 별이 되기는 그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망원경으로 봤더니 아주 큰 별이더라”며 좋아하는 표정이 꼭 어린애 같다.

하나 더.내년 7~8월 그의 고향 이르크추크의 바이칼호에서 그의 이름을 딴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신성한 바다’로 불리는 거대한 호수다.

“수심 1㎞까지 훤히들여다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입니다. 바이칼호 주변 사람들은 체력을 타고 났지요. 제 에너지도 바이칼호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그래서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바이칼호에 갑니다.”

그는 작곡가이기도하다. 지금은 연주하느라 바빠서 곡을 쓰지 못하지만, 악보도 있다. 재즈를 좋아해서 앙코르 마지막은 언제나 재즈 즉흥연주로 한다.

“재즈는 나의두번째 아내”란다. 첫 아내는 물론 클래식이다. 지휘에도 관심이 많다. “열 살부터 유명 지휘자 레슨도 받고 공부를 했지요. 인생의 절반은 지휘를할 거예요. 지금은 지휘할 시간이 없지만 5~6년 뒤 심각하게 고려해봐야죠.”

그의 연간 공연 횟수는120회 정도. 지금까지 전대륙 47개국에서 연주했다. 지금 살고 있는 모스크바에서 두 달, 나머지 열 달은 비행기에서 보내는 생활이다.

일본,독일, 프랑스에서 12장의 CD를 냈다. 일본에는 5년 연속 갔고 팬클럽도 있다. 러시아의 요즘 형편이 몹시 어려운데, 서방으로 이주할 생각은없냐니까 “내 조국은 러시아”라며 “결코 러시아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자신을 “여자들을좋아하고, 클럽에 가서 춤추고 맥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보통 젊은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연주로 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21세기 피아노의 찬란한 별이 될 것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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