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에서 TV광고 배우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전에 참전했다 실종된 미군조종사의 아들이었다.그의 아버지는 51년 7월 평양폭격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여섯살 때 아버지의 전사통지서와 함께 받아든 성조기를 안고 울먹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누렇게 빛 바랜 성조기를 꺼내 보여주면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날 불태워버리겠다”고 말했다.
거리에 나부끼는 깃발과는 다른, 한 미국인 마음속에 숨겨진 성조기의 상징성을 처음 감지하는 기회였다.
■테러공격을 받은 후 미국인들의 심리적 반응이 어떤 여론조사보다 실감있게 나온 곳이 바로 2,600개의 매장을 가진 소매체인 월마트였다고 한다.
테러 첫날 총과 필수품이 평소보다 잘 팔려 공포심리를 반영하더니, 둘째 날엔 성조기가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가 미국인의 애국심을 보였다.
이날 월마트에서 팔린 성조기는 11만6,000개로 작년 같은 날 매출고 6,400개의 거의 20배다. 엉뚱한 계산을 한다면, 테러공격후 미국인의 애국심이 20배로 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의 학교와 비교할 때, 미국의 초등학교는 학생들에게 공부보다는 모아 놓고 멋대로 놀게 하는 곳이라고 표현할 만 하다.
그러나 월요일 아침이 되면갓 입학한 코흘리개들이 지각하지 않으려고 학교로 내달린다. 국기에 대한 맹서의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런 의식을 매일 첫 수업시간마다 갖는 곳도많다. 피부색깔과 문화가 제각각인 미국 어린이들을 하나의 공동체의식에 묶어놓는 상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성조기이다.
■지금 미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성조기의 물결 속에 싸여있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독립운동이나 전쟁과 같은 위기와 역경을 거치면서 그 나라 국기는 상징성을 강화한다.
20세기 두차례 대전을 치르면서도 본토는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았던 미국이니 국민적 수모감과 위기감이 얼마나 클까.
위기 앞에 성조기를 들고 뭉치는 미국의 모습은 부럽다. 그러나 무섭기도 하다. 미국인이 열광하면 정치인의 머리가 돌지 모른다.
성조기가 물결칠수록 성조기에 대한 증오감도 커질 것이다. 미국은 세계평화를 이끌어야 할 나라이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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