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정광호(42)씨의 작품은박물관의 오래된 유물을 대하는 느낌이다. 조각을 낸 철사를 용접해 만든 항아리, 꽃잎, 나뭇잎, 북어포 등은 태생적으로 금이 간 상태다.항아리는태양빛을 오래 받은 옹기처럼 이리저리 금이 갔고, 꽃잎과 나뭇잎의 잎맥은 갈수기 논바닥처럼 굵게 갈라졌다.
29일까지 서울 청담동 카이스갤러리(02-511-0668)에서 열리는 정광호 개인전은 1994년부터 시작한 그의 ‘철사 작업’의 결과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220㎝짜리 ‘항아리’를비롯해 구리ㆍ은 철사로 만든 근작 16점을 선보인다. ‘천자문’의한자를 하나하나 이어 붙인 작품도 있고, ‘아라비안 나이트’에나 오는 요술램프를 닮은 작품도 있다. 15번째 개인전.
“왜하필 철사인가”라는 질문에 작가는 “금맥은 굴삭기가 아닌 호미로도 캐낼 수 있다”며 “그림을그릴 때 굵은 붓이 아닌 얇은 붓을 이용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그는 “책이 잉크라는 물질로 인쇄된 글자를 통해 의미가 전달되듯 사물의 의미도 표면이나 피부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며 “표면이 곧 현실의 전부”라고 덧붙였다.
차갑고 인공적인 철사로 질박하고 뽀송뽀송한 느낌의 옹기나 나뭇잎을 만든 그 대비와 역설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이 감상 포인트.
서울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정씨는 6월13~18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미술견본시장에서 9점 중 7점이 팔리는 등 인기를 모았다. 현재 공주대 만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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