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교수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1978)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책을 문학평론집으로만이 아니라 표준적인 한국어 교과서로 받아들였다. 백교수가 그 책을냈을 때의 나이를 훌쩍 넘기도록 나는 그 책의 중후하고 논리적인 한국어를 흉내도 못 내고 있지만, 위대한 정신의 그늘에서 한 시대를 살 수 있었던것을 복되게 생각한다.그 책의 뒷표지에 실린 글이 지금도 뇌리에 박혀있다. “백낙청씨는 대학교수로서, 잡지편집자로서, 그리고 양식있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 문단과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해왔다. 그는 깊은 역사적 통찰력과 투철한 시민적 책임감을 바탕으로 중후한 평론들을 발표해 왔다.” 이 평판은 그 때까지의 백교수를 총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백교수를 예언하기도 했다.
시민문학론에서 분단체제론에 이르는그의 이론적 역정은 늘 깊은 역사적 통찰력과 투철한 시민적 책임감을 동반했다. 백교수의 공인된 정체성 가운데 내게 가장 매력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들린 것은 ‘양식있는 시민’이었다.
그 ‘양식있는시민’은, 백교수가 문필가였던 만큼, 사르트르적 의미의 ‘지식인’이라는 말과도 교환될 수 있었다. 사르트르가 주재한 ‘현대’의창간사를 자신이 주재하는 ‘창작과 비평’의 창간호에 재수록한 걸 보면, 청년 백낙청은 사르트르를 삶의 한 전범으로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백교수는 한국의 사르트르였다. 이론적 실천이라는 허울을 쓰고 텍스트 속으로 망명해버린 좌우의 수많은 공론가들과는 달리, 백교수는 나이를 잊은 채 늘 당대의 가장 절박한 현안에 몸소 개입했다.
1980년대 말의 민족문학논쟁에서,그는 자신의 제자뻘 되는 젊은 비평가들과도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어둠 속에서 좌표를 잃고 갈팡질팡하는 시대의 불복종자들에게 그의 목소리는얼마나 든든했던가?
시민적 양식이라는 모호한 말은 이 비범한 지식인의 목소리에 실려서 구체의 살을 얻으며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섬광이되었다. 그 때의 황홀함을 체험한 사람들에게 최근의 그의 침묵은 너무 뜻밖이고 불편하다.
백교수는 고삐풀린 미디어 권력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미디어 권력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중첩된 모순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미디어 권력 논쟁을 한 부분으로 포함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이 주관하는‘창작과 비평’도 연루돼 있는 문화권력 논쟁에 대해서도 그는 침묵을 지킨다.
물론 어떤 사안에 대해 단지 침묵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달 수도 있다. 그러나 굼뜬 법률학도 어떤 일을 하리라고 기대되는사람이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 부작위범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개인을 단죄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윤리의 영역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침묵하는 지식인이 백교수만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연루된 것이 공동체 구성원 전체일 때도, 그 상황에 맞서는 행동이나 발언의 의무가 특정한 사람에게 더 무겁게 지워지는 것 역시 사실이다. 내게는 백교수가 그런 분이다. 그는 ‘투철한 시민적 책임감’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편집주간 김명인씨는 이 잡지 가을호의 권두언에 이런 말을 적어놓고 있다. “지식인은 본질적으로불안한 존재이고, 또 불안해야 할 존재이다. 지식인과 안정은 양립하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론적 근거를 묻지 못하는 지식인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개입할 수 없다.”
나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며 백교수의 침묵이 혹시 그의 안정과 관련돼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한다. 갑년을 넘긴 그 분의 연세를 생각하면 그 안정과 침묵을 비판하는 것은 박정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비판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그가 백낙청이기 때문이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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