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을 흐르는 강물은 유난히 몸을 뒤튼다. 곡류천이다. 산이 많은 노년기지형이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물길은 땅의 모습도 의미심장하게 만들어 놓았다.그중 특이한 지형이 ‘물돌이동’이다. 물돌이동은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그렇지만 미루어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물이회돌아 나가는 곳에 위치한 마을’이다. 굳이 한자로 표기를 하자면 하회(河回)마을이다.
물론 경북 안동시의 하회마을도 물돌이동이다. 강물이 굽이쳐 흐르면서 땅을 깎고 토사를 쌓아 만들었다.
한쪽은 육지와 붙었으니 섬은 아니다. 그러나붙은 쪽은 대부분 물에 다치지 않는 단단하고 험한 지형이어서 그 안의 삶은 섬처럼 닫혀 있다. 그래서 ‘육지속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경북 예천군의 의성포(용궁면 대은리)는 땅의 모양만을 따져볼 때 물돌이동의 모델이라고 할 만 하다. 물길의 이름은 내성천. 낙동강 상류의 지류이다.
물기운이 태극문양으로 회돌아가면서 물돌이동을 만들어 놓았다. 물방울 같기도 하고간신히 가지에 꼭지를 붙이고 있는 호박같기도 하다. 몇 사람이 모여 반 나절만 삽을 놀리면 육지와 완전히 인연을 끊을 듯 아슬아슬하다.
이 마을은 원래 오지 중의 오지였다. 그래서 귀양지로 쓰였다. 산길만 막아놓으면오도가도 못하는 천혜의 옥사(獄舍)이기 때문이다.
조선의 단종이 한많은 인생을 마감한 강원 영월군의 청령포도 그런 이치 때문에 귀양지가 됐다.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기가 힘들면 바깥에서 안으로 들기도 힘든 법.
그래서 나라의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은신처가 됐다. 지금은 마을 대부분이 논밭이지만원래 소나무가 무성했다. 밖에서 보면 도대체 안에 무엇을 들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 예천의 아랫마을 의성(경북 의성군)에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했다.
그래서 의성포란 이름을 얻었다. 이 곳이 점차 외지인에게 알려지고 심심찮게 관광객이 찾으면서예천군은 수 년 전 혹 의성포가 의성군에 있는 것으로 오해할까봐 ‘회룡포’란 이름을 따로지었다. 그래서 예천군 내의 모든 이정표는 회룡포로 되어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두 곳으로 나 있다. 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멀리 개포면소재지까지 돌아야 한다.
그러나 차로 돌아볼 것도 없는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걸어 들어가는 것이 좋다. 육지의 모래밭과 마을의 모래밭을 이어놓은철다리가 있다.
말이 철다리지 교각을 대충 세우고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두 줄로 깔아 놓은 다리이다.
마을 사람들은 구멍이 뽕뽕 나 있다고 해서 ‘뽕뽕다리’라고 부른다. 이 다리가 생긴 것도 불과 10년 전이다.
그 전에는 그냥 물을 건넜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커다란 고무통에 태우고 왕복운행을 시켜줘야 했다.
마을을 모두 돌아보는 데는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을 휘감고있는 모래밭을 밟으면 사정이 달라진다.
너무나 곱고 깨끗한 강모래는 바닷모래처럼 끈적거리지 않는다. 앉거나 누워 강물과 하늘을 바라보는 맛이 괜찮다. 물은 투명하게 맑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보호색이 뛰어난 모래무지도 쉽게 눈에 띈다. 옥의 티가 있다면 햇볕을 피할 그늘이 없다는 것.
그래서 한여름에는 사막의 모래밭처럼 후끈 닳아 오른다. 바람과 모래밭이 조금 차가워져야 편안하게 강의 정취에 빠질 수 있다.
강 건너편은 비룡산.물을 따라 산자락의 절벽이 드리워져 있다. 바위 사이의 단풍나무가 물이 든다면 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마을의 모습을 잘 보려면 비룡산에 올라야 한다.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운문대사가 세운 고찰 장안사가 있다.
절까지 차로 오를 수 있다. 장안사를 지나 약 400㎙를 더 오르면 회룡대라는 전망대가 있다. 철길 침목으로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회룡대에 서면 예사롭지 않은 풍광이 앞에 펼쳐진다. 거대한 비행접시가 내려와앉은 듯하다. 위에서 바라보는 강물은 물가에서 볼 때와 색깔부터 다르다.
얕은 곳에서는 마치 물이 없는 듯 투명하다가 깊은 곳에서는 짙은 비취빛으로변한다. 마을 논의 벼가 익어가기 시작했다.
하늘이 더욱 푸르러지면 마을 전체가 은빛 모래밭에 올라 앉은 황금마을로 변할 터이다.
■가을 나들이에 좋은 물동이동3
한반도에는 지형의 특성상 물돌이동이 셀 수 없이 많다. 특히 큰 강의 중상류에많다. 독특한 풍광 때문에 이미 여행지로 유명해진 곳도 부지기수이다. 가을 나들이에 적당한 유명 물돌이동 세 곳을 꼽아본다.
▽하회마을(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물돌이동의 대표격. 풍산류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집성촌으로 서애 류성룡 등 뛰어난학자와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간 뒤 급격히 알려져 이제는 경북 지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됐다.
낙동강이 동진하다가 S자형을 이루며 마을을 휘감는다. 의성포처럼 똑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이 아니라 버선의 형태를 하고 있다.
마을 앞쪽을 흐르는 낙동강과 깎아지른 절벽인 부용대, 하얀 모래밭, 울창한 솔숲이절경을 이룬다. 잘 보존된 고옥을 보며 서정이 넘치는 골목길을 걷는 맛도 별나다. 주말이면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을 구경할 수 있다. 하회마을관리사무소 (054)864-3669
▽앞섬(전북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 전도마을)
금강의 물줄기가 돌아나가는 곳. 그래서 금회라고 불리기도 한다. 동네 이름도육지 속의 섬을 뜻하는 내도(內島)리이다. 전라도 지역 금강의 마지막 부분이기도 하다.
호남의 계곡을 흐르던 금강은 앞섬을 휘돌아 충남 금산땅으로넘어간다. 앞섬은 양간 통통한 가지의 생김새를 하고 있다. 후도교, 내도교 등 두 개의 다리가 남북으로 나 있고 내도리 유원지가 조성돼 있다.
앞섬은 주민들이 사랑하는 명소이다. 여름과 가을 무주구천동이 피서객과 단풍인파로몸살을 앓을 때 무주의 주민들은 앞섬을 찾는다.
조약돌과 금빛 모래가 깔린 강변, 병풍처럼 둘러쳐진 기암의 절벽이 아름답다. 옛 사람들이 뱃놀이를즐기던 칠암소가 명물이다. 무주군청 문화관광과 (063)320-2544
▽바위안(강원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한 줄기의 물길이 아닌 두 줄기의 물길이 만들어 놓은 독특한 물돌이동이다. 남한강의최상류의 한 지류인 임계천이 골지천과 합류하는 곳으로 동쪽은 임계천, 서쪽은 골지천이 흐른다.
망치 머리를 닮았다. 골지천은 삼척시 청옥산과 동해시두타산에서 시작되는 물줄기. 숲이 울창한 곳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언제나 수량이 풍부하다.
특히 골지천은 바위안을 시작으로 크게 휘돌아치며 많은절경을 만들어 놓았다. 기암 사이로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흘러간다.
한꺼번에 아홉가지 절승을 감상할 수 있다는 구미정이 바로 옆에 있다. 정선군청문화관광과 (033)560-2367
■가는 길
문경에서 들어가는 것이 좋다.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읍을 향하다 보면 용궁면이나온다. 우회도로를 타지 말고 시가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용궁농약사(용심회) 간판을 보고 우회전, 약 4㎞를 달리면 양석2리 버스정류장이 있고오른쪽으로 회룡포, 장안사 이정표가 있다.
우회전해 얕은 언덕을 넘으면 왕복 1차선 철다리,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다시 이정표가 나온다. 여기서부터회룡포와 장안사까지는 논 사이로 난 농로.
왕복 1차선이기 때문에 마주 진행하는 차가 있는지 확인하고 진입해야 한다. 잘못하면 장거리 후진을 하게된다.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예천읍에서 용궁면 대은리까지 오전 6시 50분부터 오후 6시 50분까지 군내버스가 9회 운행한다. 용궁면사무소(054)650-6609
■쉴 곳
의성포에는 숙박시설이 없다. 주민들이 정식으로 민박을 치지 않지만 남는 방이있고 묵어가기를 원하면 잠을 잘 수는 있다.
김병준씨(054-655-6551) 집에 방이 남는데 최근 집안의 상을 당해 당분간은 숙박이 어려울듯하다. 인근의 문경새재도립공원에 숙박시설이 많고 예천읍에 강변모텔(655-2618), 황금모텔(655-3456) 등이 있다. 피부에 좋다는 예천온천(654-6588)에들러 피로를 풀 수 있다.
■ 먹을 것
내성천 맑은 물에서 건져 올린 민물고기 매운탕이 일미이다. 시장매운탕(054-653-6507)이잘 하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단골식당(653-6126)은 오징어불고기와 순대국이 유명한 집. 박달식당(652-0522)도 순대국이 맛있다.예천읍내에는 전국을달리는청포집(655-0264)이 있다
. 녹두를 갈아 만든 청포묵 하나로 50년이 넘게 장사를 한 집이다. 청포묵을 중심으로 한정식과 달걀 지단, 당근, 청채 등 5색으로 묵을 단장한 탕평채를 맛볼 수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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