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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문명의 단층선은 불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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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문명의 단층선은 불타는가

입력
2001.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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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 사교계의 살롱. 호사스런차림의 귀부인과 시인이 질문을 주고받고 있다. “당신은 어느 시대에 살았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합니까?”당시의 관습이 그러했다. 모두 자기삶을 돌아보고, 그것에 적합한 시대를 찾아 마음 속으로 역사의 가도를 달려간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적합한 시대를 설명하면서도, 삶이 과거와 결합되어 있어서 자기가 먼 과거로부터 지나온 시간의 정점(頂点)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곤 했다.

21세기 벽두에 2세기 전 문화를 떠올린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에서 19세기의 이 문화를 상기시킴으로써, 삶이 충실했던 시대를 그려보고 있다. 그러나 그가 더 강조한 것은 현대 대중사회의 위험성에대한 경고이며 비판이다.

지난 20세기는 살 만한 시대였던가. 1ㆍ2차 세계대전과 대학살, 혁명과 냉전 등으로 얼룩진 지난 세기는 과학의 발달에도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세기로 기록되어 마땅하다.

지난 주 세계인은 증오가 얼마나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충격과 전율 속에 목도했다. 강자 뿐 아니라 약자도 가공할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세계최강국인 미국의 부(富)와 문명을 순식간에 잿더미 같은 허상으로 바꿔놓는 파괴력이 21세기의 새 날을 암울하게 채색하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자주 거론된다. 서구인의 입장에서서구문명과 비(非)서구문명의 충돌을 우려하는 책이다. ‘충돌’을 쉬운 말로 바꾸면 ‘전쟁’이다.

냉전 시대가 끝난 세계는7~8개의 주요 문명권으로 나뉘는데, 가장 위험한 분쟁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에서 발생한다는 가설이다. 저자는 충돌 중에서도 미국을 포함한서구와 이슬람문명의, 서구와 중국문명의 충돌을 가장 개연성 있게 상정하고 있다.

세계의 위대한 종교는 모두 비서구문명에서 나왔다. 이에 비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정치이념은 또한 모두 서구에서 나왔다. 이런 배경에서 파생되는 갈등은 문명과 문명 간의 충돌로 대체되고 있다는것이다.

현상을 보면, 이슬람 나라들은 15년 전에 비해 1995년 현재 문화적ㆍ사회적ㆍ정치적으로 이슬람화가 심화했다. 그러나 서구의 인구는 중국,이슬람, 힌두 문명권에 이어 4위이고 계속 줄고 있다.

이 책은 문명 간의 조화보다는 갈등을과장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인의 편견에 가득찬 이 가설은 하나의 엄연한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 점이불안하다.

이번 사태를 ‘문명의 충돌’로 바로 해석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일이겠으나, 중세 이후 기독교 유럽과 이슬람 국가 간에는 지속적으로 갈등과 전쟁이 반복돼 왔다는 점이 불안의 그림자를 더욱 진하게 만든다.

19세기 살롱 사람들처럼 우리는어느 시대를 그리워할 뿐, 그 시대를 선택할 수는 없다. 150년 전 레오폴드 폰 랑케는 ‘젊은이를 위한 세계사’ 에서 “누군가 호머보다 위대한 서사시인이기를 바라거나, 소포클레스보다 나은 비극작가이고자 바란다면 일소에 붙여질 것”이라고 말했다. 물질적인 면에서는 진보를인정하지만 도덕, 혹은 정신적인 면에서는 인류의 진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보복은 이슬람 나라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적인 증오와 분노의 먹구름을 불러 모아 동참시키고 있다. 테러는 지탄 받아 마땅하고 미국인의 분노도 충분히이해된다.

그러나 분노가 가라앉은 뒤 보면, 언제나 무력 보복보다는 자제가 더 아름답고 위대해 보였다. 어느 시대는 흔히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보다는 증오를 가르치지만, 우리가 기댈 궁극적 가치는 사랑과 평화이다. 이것이 가세트나 랑케가 저서를 통해 남기고자 한 메시지다.

박래부 심의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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