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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대전 / 전쟁 점철 아프간 - 열강 각축장…피의 역사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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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대전 / 전쟁 점철 아프간 - 열강 각축장…피의 역사 반복

입력
2001.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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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천형(天刑)의 땅인가. 아프간의 어린이들은 평화를 모른다. 1979년 구소련의 침공에에서 현재의 내전에 이르기까지 보고 자란 것이 포화와 시체, 그리고 피난 뿐이다. 어른과 그들의 조상들에게도 평화는 낯설다.고대부터 시작된 이민족의 잦은 침입, 종족끼리의 혈투, 이슬람 종파간의 분쟁 등 끝없는 전쟁들이 민초들을 엄습해왔다. 소련과의 10년 전쟁으로만 100여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21세기를 열자마자 아프간인들은 다시 새 세기의 첫 전쟁을 맞아 유랑의 길을 떠나야 한다.

‘중앙아시아의 심장부’라는 지정학적특성 때문에 아프간은 예로부터 여러 민족이 드나드는 길목이 됐다. 민족구성이 아프간족(파슈툰족), 타지크족, 우즈베크족, 하자라족 등으로 매우복잡하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프간족의 땅(아프가니스탄)’이라는 국명이 말하듯 사회의 주류는 아프간족이 장악하고 있다. 공용어는아프간족의 파슈툰어와 타지크족의 페르시아어(다리어) 등 두 가지이지만 징기스칸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하자라족과 우즈베크족도 저마다 고유의 언어를갖고 있다.

주민의 80%이상이 이슬람 수니파에 속해있지만 타지크족과 하지라족은 시아파에 속해 통일될 날이 없고 정치ㆍ사회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북부지역에 거점을 두고 집권 탈레반 정권과 싸우고 있는 반군은 시아파를 신봉하는 타지크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아프간 내부 갈등의심각성을 드러낸다.

국토가 내륙교통의 요충지이자 중앙아시아의 세력판도를 좌우할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 때문에 전쟁과 내전은 아프간인의 숙명이다. 1219년 몽골제국의 침입으로 이민족의 지배에 들어간 뒤19세기 들어서는 아시아로 뻗어나온 영국과 남진을 노린 러시아가 이곳에서 맞부딪혔다.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영국이 인도를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 침공을 감행해 아프간인과 두차례(1838~1842, 1878~1880) 전쟁을 벌인 뒤 보호국으로 삼았다. 191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73년까지 왕정체제를 유지했으나 쿠데타로 군주제가 무너진 뒤 기나긴 질곡이 이어졌다.

왕정붕괴후 등장한 공산 정권이 이슬람혁명 이데올로기로 흔들리자 구 소련이 79년 10만 병력으로 밀고 들어와 카불에 괴뢰 정권을 세웠다. 지하드(聖戰)를 내건 무자헤딘 게릴라들은 선조들이 몽골군이나 영국군과 싸웠던 방식 대로 전투를 벌여 10년 만에 탱크와 헬리콥터를 물리쳤다.

하지만 내전의 포화는 그칠줄 몰랐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무자헤딘 세력을 축출하고 97년 집권한 뒤에도 북부지역을 거점으로 한 시아파 반군의 저항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프간의 전화는 지정학적 위치에다 복잡한 종파간 갈등과 주변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더욱 참혹해졌다. 냉전시기 미국은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당시 각 부족세력을 앞세워 대리전으로 맞섰다. 이란과 파키스탄 등도 무자헤딘 반군을 거드는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했다.

탈레반 집권 후에는 수니파의 확산을 우려한 이란 시아파정권이 반군을 지원하는등 인접국가들의 개입은 계속됐다.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인 파키스탄과 사디아라비아가 동조에 나섰고, 미 중앙정보국(CIA)은 무자헤딘에 거액의 무기를 쏟아부었다.

99년에는 탈레반과 반군세력간 종전협정이조인되면서 20여년만에 총성이 멎는 듯 했으나 금새 협상문은 휴지조각이되고 말았다. 민생은 극도의 피폐상을 보이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현재 수도 카불인구150만명 중 절반이상이 구호품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초적인 경제활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레반 세력은 이슬람 경전을 자구대로 해석, 이에 근거한 철권통치로 원성이 높아만 가고 있다.

더구나 유엔은 지난해 12월 탈레반이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 대사관 폭파 등 테러배후 세력인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인도를 거부하자 무기금수 및 비행금지 등 10개항의 제재조치를 단행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철광석과 석유 등 엄청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도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 채굴할 기회조차 갖지못한 아프간의 장래에 다시 짙은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정정화기자

jeong2@hk.co.kr

■아프간 내전사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1973년 왕정체제를 전복하고 대통령에 오른 친소세력인 인민민주당 다라키 정부가 이슬람 동맹과 대립하면서 시작됐다. 다라키에 이어 쿠데타로 집권한 아민 대통령도 이슬람 게릴라세력인 무자헤딘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자 소련군이 79년 아프간에 진군했다.

10년간의 대소전쟁에서 승리한 무자헤딘은 92년 친소정권인 나지불라 대통령을축출한 뒤 9개 세력이 연립정부를 구성했으나 주도권을 놓고 전투에 들어간다.

시아파이자 타지크족인 랍비니 대통령과 아흐메드 마수드 국방장관을 중심으로한 이슬람협의회파와 파슈툰족인 헤크마티아르 총리파, 나지불라 정부군의 북부사령관을 역임했던 우즈베크족 출신의 압둘라시드 도스팜 장군파 등으로 갈려내전이 극에 달했다.

탈레반이 96년 정권을 장악한 뒤에는 랍비니와 최근 숨진 마수드 장관이 북부지역에서 반탈레반 연합세력을 이끌고 있다.

정정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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