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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게임중독 막으려면…부모 감정대응은 되레 역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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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게임중독 막으려면…부모 감정대응은 되레 역효과

입력
2001.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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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이들을 컴퓨터게임에서 무조건 격리하는 일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지도 않다.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대한 올바른 습관을 갖도록 하는 데는 부모, 특히 집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주부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게 전문가의 지적.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魚起準)소장은 “초기 게임 접촉단계에서 부모가 적당한 게임 시간 등 일종의 룰을 정해주는 것이 부작용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 소장은 “그럼에도 자녀가 게임 몰입단계에 들어갔을 경우 윽박지르지 말고 중독 후유증 등 말리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감시와 설득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금지사항이 많은 현실과 달리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익명의 공간에 대한 흥미 조절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할 경우 도리어 아이들이 PC방을 전전케 되는 등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는 게 어 소장의 얘기.

컴퓨터게임에 관한한 가정보다도 우리 사회의 제어기능 자체가 전무한 사회현실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많다.

전문가들은 게임 업체에 수입에 상응한 책임을 지우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이순형(李順炯) 교수는 “게임 프로그램 판매시 사용 연령이나 시간을 제한하는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보급하도록 하는 강제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컴퓨터게임이 심각한 현실교육문제가 돼있는 데도 불구, ‘방과 후 일일 뿐’이라고 외면하고 있는 학교도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올바른 컴퓨터 사용습관과 게임 중독 폐해 등을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가르쳐야 한다”는 게 이교수의 주장.

그는 “컴퓨터 보급률과 게임 프로그램 구입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는 게임 부작용도 외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며 “학교에서 이 문제를 마약 및 알코올 중독, 성폭력 등 사회병리 현상과 같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컴퓨터생활연 어 소장은 “게임이 스트레스 해소와 공부에 도움이 되며, 열심히 하면 억대 수입을 올리는 화려한 프로 게이머가 될 수 있다는 허상부터 깨야 한다”며 “이 같은 허상이 청소년은 물론 기성 세대의 의식에도 스며들어 게임의 폐해에 대한 사회 전반의 적극 대응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관계당국이 시판 게임 프로그램을 면밀히 재검토해 사용등급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학부모들에게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게임에 관한 자녀 지도방식을 교육하는 상시 시스템 구축도 시급하다는 지적들이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게임중독 예방책

1. 게임은 하루 1시간 30분 이내로 제한한다.

2. 식사는 반드시 제때에 하도록 한다.

3. 잠은 정해진 시간에 재운다.

4. 바깥에서 30분 이상 햇빛을 쬐도록 한다. 햇빛은 신체 면역기능을 향상시키고 마음을 안정시킨다.

5.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준다. 게임은 남과 어울리는 것을 점점 어렵게 하므로 인간적 유대를 강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6. 1주일에 2회 이상 운동을 시킨다. 등산 농구와 같은 운동은 오랜 컴퓨터 작업으로 인한 자세 불균형을 예방하고 현실 세계에 대한 흥미를 돋워준다.

■초등생 홍모군의 경우

저는 지금 학교를 다녀와 방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요. 인터넷 게임 ‘디아블로2’를 하고 있지요. 레벨은 38. 친구들 중에는 80이 넘는 고수도 많지만, 이 정도도 잘하는 거에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경험치가 팍팍 깎이고, 자폭 캐릭터로 무장한 몬스터 때문에 여러 번 죽었어요.

나도 공격을 막 퍼부어 몬스터를 여럿 죽였지요. 잔인하지 않냐구요. 가짜인데요, 뭐. 피도 초록색이어서 별로 무섭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지난 겨울 우리집 컴퓨터에 게임CD를 깔던 날은 정말 기뻤어요. 저희 집은 엄마 아빠가 다 일을 하시기 때문에 오후에는 할머니가 와서 저를 돌봐주고 있어요.

제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할머니는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아이구, 우리 손주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 커서 훌륭한 사람 되겠네”라고 칭찬까지 하셨어요. 컴퓨터를 모르는 엄마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게임에 몰두해 있는데도 “현기야, 쉬었다 공부해라”고 부르셨지요. 그래서 틈만 나면 게임을 했어요.

근데 문제가 생겼어요. 얼마 전에도 밤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전화를 받고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소리치셨어요.

“너 공부 안하고 맨날 게임만 하고있지.” 얼마나 놀랐던지. 실은 그동안 공부가 엉망이 됐거든요. 여름방학에는 책을 1권도 못읽었어요. 성적도 반에서 1, 2등이었는 데, 뚝 떨어졌어요.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하셨나 봐요.

그날 이후 엄마는 게임 금지령을 내리셨지만, 하고 싶은걸 어떡해요. 그리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해요.

게임을 하면 친구들하고 말이 통하니까 좋아요.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는 친구 집에서 게임하다가 들어오곤 했어요. PC방에도 갔어요. 거기서는 속도가 팡팡 돌아가고 화면이 큼직해서 진짜 전쟁하는 것 같거든요. 1시간에 1,000원씩 내야하기 때문에 학용품, 참고서를 사라고 받은 돈을 갖다 썼어요.

그러다 이런 걸 다 알게 되신 엄마가 “같이 병원에 가자”고 하셨어요. 한참 의사선생님과 얘기하신 엄마는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셨어요. 집에 와서 엄마는 상냥한 표정으로 저에게 나에게 게임을 하면 무엇이 좋은지와 나쁜지를 설명하고 ‘인터넷 사용규칙’을 함께 쓰자고 했어요.

‘인터넷을 하루에 1시간이내로 사용한다, 부모 허락없이 돈을 내는 내는 사이트에 가지 않겠다, 나는 이상의 규칙을 집, 학교, 도서관, 그리고 친구의 집에서 지킬 것이다….’ 엄마랑 엄지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어, 벌써 게임한 지 1시간이 지났어요. 이제 그만해야 겠어요. 더 하고 싶지만 약속을 지켜야지요. 엄마는 나를 믿는다고 했거든요. 그리고요. 요샌 게임을 못 해도 학교에서 집에 오면 엄마가 있어서 기분이 좋아요. 전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괜히 신경질이 났거든요.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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