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은17일 탈레반 정부의 거점이자 이번 테러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 남부 도시 칸다하르에 대표단을 파견, 협상에 나섰다.군 정보부(ISI) 메흐무드 아흐메드 부대장이 이끄는 대표단은 이날 와킬 아흐메드 무타와켈 외무 장관이 이끄는 아프간 대표들과 대좌했다.
양측의대좌 결과는 미국의 대(對)테러 보복작전 전반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1단계로 초읽기에 들어간 아프간 공격작전의 방향과 강도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양측의담판 진행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파키스탄측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탈레반 정권붕괴를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 관리들에 따르면 아흐메드 대장은 ‘수일 내로 빈 라덴을 내놓지 않으면 미국의 침공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빈 라덴과 그의 보좌진을 인도하고, 그의 훈련캠프들을 폐쇄하면 탈레반 정부는 정권을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회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탈레반측은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가 이미 선언한 대로 “빈 라덴은 이번 테러와는 무관하며 미국을 지원하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지하드(성전ㆍ聖戰)에나설 것”이라고 주장하며 파키스탄측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지원 문제에서 ‘원론 찬성, 각론 유보’의 양다리 걸치기식 입장을 보이던 파키스탄 정부가 이처럼 방향을 틀어 탈레반에 ‘최후통첩’을 한 데에는‘귓불을 잡아당기는’ 미국의 ‘협박’이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는 파키스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 관리들이 무샤라프대통령 정부에 (미국에) 협력하지 않으면 ‘전쟁에 준하는’ 모든 수단을 써서 파키스탄을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따라 미군기의 영공 통과 및 공군기지 사용 등 미측의 요구에 대해서도 파키스탄측은 조만간 이를 전폭 수용하는 방향의 구체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파키스탄은 17일 아프간으로 가는 모든 물품의 수ㆍ륙통관을 금지해 사실상 경제봉쇄에 들어갔다.
문제는1999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무샤라프 정권의 취약성이다.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경제제재 해제 및 국제금융기관의 자금지원 등을 확보할 수있겠지만 강력한 국내 반발에 부딪치게 될 것은 뻔하다.
이미 곳곳에서 이슬람 민병대 등의 미국 지원 반대시위가 일고 있다. 아프간의 보복선언도우려가 아닐 수 없다
한편혼란의 와중에서 파키스탄에 중대사태가 발생할 경우 핵무기 통제 불안으로 서남아 일대 국제ㆍ안보관계에도 상당한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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