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운동가 김교신(金敎臣ㆍ1901~1945)의 글들이 ‘조와(弔蛙)’(동문선 발행)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1972년에 그의 전집이 6권으로 출간된 바 있지만 말투가 너무 예스러워 일반인들이 읽기엔 좀 어려웠는데, 이번 선집은 그가 주재하던 잡지 ‘성서조선’에서 111편의 글을 가려뽑아 요즘 독자들의 감각에 맞게 다듬은 것이다.
‘개구리를 추도함’이라는뜻의 ‘조와’는 이 선집의 제일 마지막 글 제목이다. ‘성서조선’ 158호(1942년 3월)의 권두언인 ‘조와’는 필자가 기도터로 삼은 연못가에서 극심한 겨울 추위에 얼어죽은 개구리들을 묻어주며 그 추위에도 살아남은 개구리들을 보는 감회를 적은 글이다.
이 글은 ‘아, 전멸은 면했나 보다!’하는 안도로 끝난다. 일제는 이 글에서 조선민족의 현실에 대한 은유를 읽었고, 즉시 이 잡지를 폐간하는 한편 김교신을 비롯한 편집자들과 독자들을구속했다. 이것이 이른바 ‘성서조선’ 사건이다.
김교신은 한국 기독교운동사에 무교회주의의 씨를 뿌린 사람이다. 일본인 스승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영향 아래 일구어진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는 ‘조선산(朝鮮産) 기독교’의 수립이라는 필생의 목표와 짝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이 책의 첫 글인 ‘성서조선’ 창간사(1927년 7월)에서 이미 또렷하다. 김교신은 이 글에서잡지의 표제가 ‘성서조선’이 된 이유를 “우리의 마음 전부를 차지하는 것은 ‘조선’이라는 두 글자이고, 애인에게 보낼 최고의 선물은 성서 한 권뿐이니양자의 어느 하나도 버리지 못하여 된 것이 그 이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창간사는 또 “‘성서조선’아,너는 소위 기성 신자의 손을 거치지 말라. 그리스도보다 외국인을 예배하고, 성서보다 회당을 중시하는 자의 집에서는 그 발의 먼지를 털지어다”라고 말함으로써, 김교신의 조선산 기독교가 무교회주의라는 점을 또렷이 하고 있다.
김교신에게 예수는 교회가 아니라 성서였다. 우치무라가 사랑한 것이두 J 곧 Jesus(예수)와 Japan(일본)이었다면, 김교신이 사랑한 것은 두 C 곧 Christ(그리스도)와 Chosun(조선)이었다.
거기에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적 제도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조와’에 묶인 글들은 이렇게 ‘성서’와 ‘조선’을 두 축으로 해서 저자의 종교적ㆍ일상적 사색을 펼쳐보이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쓰여진 이 글들은 믿음이나 민족의식을 흔히 세속의 부귀로 대치하는 오늘의 기독교에 한 지침이 될 만하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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