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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京仁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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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京仁線

입력
2001.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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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9월18일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33.2km)이 개통됐다.당시 노량진은 서울 외곽의 후미진 곳이었다. 1900년 7월5일 한강 철교가 준공됐고, 사흘 뒤인 7월8일에 노량진과 서울(그 때의 서울역은 지금의 이화여고 자리) 사이의 철도가 개통돼 서울과 인천이 온전히 연결됐다.

최초의 경영권은 철도를 부설한 경인철도주식회사에 속했다. 경인선은 1960년대에 복선화됐고, 1974년에 전철화됐다. 정부는 제물포와 노량진이 연결된 9월18일을 1973년에 철도의 날로 지정해 그 뒤 기념해오고 있다.

경인선이 부설될 당시의 인천과 오늘의 인천은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 사이에 면적이 150여배가 늘어났다.

20세기 초 인천은 송림동, 창영동, 도원동과 서쪽의 항만지대를 포함하는 6.05㎢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인천광역시는 강화군, 옹진군, 검단면 등을 통합해 면적이 958.24㎢에 이르는 한국 최대의 시다. 서울특별시의 1.5배가 넘는 면적이다.

인천의 첫 명칭은 미추홀(彌鄒忽)이다. 조선조 성종 때 왕명을 받아 노사신 등이 지은 ‘동국여지승람’에 백제 시조 온조왕의 형인 비류가 지금의 인천에 정착해 이곳을 미추홀이라고 명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에서는 조미 수호통상조약, 한일간의 제물포조약, 조영 수호조약, 조독 수호조약등이 체결됐고, 이에 따라 이 도시는 한국과 구미 여러 나라 사이의 통상 중심지가 됐다. 해방 이후 한국과 중국 사이에 교류가 끊겨 인천은 한때 생기를 잃었지만, 1992년의 수교 뒤 ‘서해안 시대’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새얼문화재단에서 내는 계간지 ‘황해문화’는 인천 중흥을 모색하는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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