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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삼풍과 세계무역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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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삼풍과 세계무역센터

입력
2001.09.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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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액션영화는 즐기지만 전쟁영화는 싫어한다. ‘다이 하드’같은 액션영화는 폭력이 난무해도, 그 줄거리나 묘사가 너무나 황당하고 비현실적이서 오히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전쟁영화는 생생한 사실감 때문에 보기가 부담스럽다.그런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액션영화보다도 더 악랄하고 참혹한 테러사건이 미국의 심장부에서 발생하였다.민간 항공기를 무기로 하여 최대의 사상자를 목적으로 자행된 이번 테러는,그 주도면밀함과 잔혹함이 온 세계의 공분과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를 TV 화면을 통해 보면서 1995년의 삼풍백화점 참사를 연상한 사람은 나 혼자만은 아니리라. 지상 5층에 높이 28m의 삼풍백화점과 110층에 높이 417m의 세계무역센터의 붕괴를 규모로 비교하는 것은 가당치 않으나,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우선두 건물 모두 평상시의 붕괴사고로는 양국 국내 사상 최대의 희생자를 냈다. 붕괴 당시 삼풍백화점은 수천명이, 세계무역센터에는 수만 명이 건물 안에서 정상적인 활동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은 서울 강남의 부유층이 주고객인 최고급 백화점이었고 세계무역센터는 세계 유수의 회사들이 입주한 최첨단 빌딩이었다. 두사건 모두에서 헌혈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이어 위기 속에서 꽃피는 인간애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두 사건은 유사점 못지 않게 그 원인 뿐 아니라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두 나라의 정부,언론, 국민들의 차이점 또한 극명하게 부각시켰다. 세계무역센터는 이슬람 극렬분자라는 외부의 적에 의해 붕괴되었지만 삼풍백화점은 부실공사라는 내부의 적에 의해 붕괴되었다.

삼풍 백화점 사고 당시 정부와 여당은사태 수습보다는 사건의 악영향이 정권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였다. 야당은 전가의 보도인 책임자 문책과 국정감사를 들고 나왔음은 물론이다. 미국에서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든 상하원 의원이 부시 대통령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등 온 국민이 단결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국 언론 보도 태도에도 차이점이 있다. 우리 언론은 국내에서 대형 참사가 터졌을 때마다 사상자수의 추측보도, 피상적인 원인분석과 처방, 희생자들의 개인적인 비극에 초점을 맞춘 보도로 국민의 분노와 비통에 기름을 붓지는 않았는가? 미국 언론 매체에서 구멍뚫린 안보와 당국의 대처에 대해 비난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사상자 수에서 삼풍 백화점의 10배가 넘는 이번 참사에 희생당한 개인들의 기구한 사연이 없을 리 없으련만 언론 매체를 통해 울부짓는 유가족의 모습 역시 보기 어려웠다. 뉴욕타임즈는 1,600명의 직원 중 1,000명의 직원을 잃고도 사무실을 옮겨 이틀만에 업무를 재개하여 채권시장 거래를 가능케한 캔터사를 심층보도하여 희망을 불어 넣었다.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 군대 자원열풍이 부는 등 그 어느때보다도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고취되어 있다. 무엇이 이들의 애국심을 불러 일으키는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제 본분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붕괴 직전의 건물에 들어가 떼죽음을 당한 300여 명의 최정예 소방대원들과 경찰관들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그들의 가족을 위해 1인당 15만 달러를 지원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거액의 성금을 줄을 이어 기탁하고 있다.

외부의 적에 의한 희생자는 불행의 와중에서도 애국심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지만 부실공사같은 내부의 적에 의한 희생자는 국민들에게 자괴감과 허망함을 줄 뿐이다. 내부의 적은 국민 각자가 자기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 데서 온다. 우리 모두 제 본분을 다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다.

전성빈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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