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프랑스월드컵은 당시 국가대표 경력 8년째였던 나에겐 개인적으로 두번째 월드컵 무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볼을 찬 이후 내 꿈이었던 월드컵 무대를 2번씩이나 밟았지만 나에겐 영광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남았다. 실 타래는 첫번째 대회였던 1994년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부터 잘못 꼬였다. 후반전서 나는 골키퍼와 1대1로 맞서는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지만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당시 내가 골을 넣었더라면 한국은 1승1무1패로 사상 처음 월드컵 16강에 진출할 수도 있었다. 첫 승을 거둘 경우 아파트한 채를 준다는 소문이 나돈 터라 선배들은 나만 보면 “내 아파트 내놔”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4년 뒤 프랑스. 이번엔 1승도, 16강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프랑스로 향했다. 예선 첫번째 상대였던 멕시코는 반드시 잡는다고 믿었다. 전반 27분 내 특기였던 왼발프리킥이 골네트를 갈랐을 때 순간 “한국축구사를 내가 새로 썼다”며 크게 흥분했다. 월드컵 사상 첫번째 선제골. 그러나 불행히도 그 기쁨은 몇 분 지나지 않아사그러들었다. 2분 후 멕시코 미드필더 라미레스를 백태클, 퇴장명령을 받은 것이다. 너무 어이가 없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백태클에 대한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FIFA의 의지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한국 선수들은 앞서 열린 경기를 보고 그런 규정은 ‘엄포용’이라고생각했다. 상대선수도 크게 다친 곳도 없이 금새 일어나 뛸 수 있었던 가벼운 마찰이라 옐로카드도 안 나올 것이라고생각했다. 나도, 팀도 무척 당혹스러웠다. 곧바로 TV도 없는 지하 라커룸에 갔다. 전반전을 마치고 1_0으로 이기고 있다는 얘기를 동료들에게들었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후반전 때 관중들의 함성 소리를 세차례 들었다. 순간 1_3으로 역전됐거나 2_2동점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패배였다. 네덜란드전에서0_5로 참패한 것도 내 백태클이 팀 분위기에 끼친 영향때문이었다. 우리 수비수는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파울이 퇴장으로 연결되지는 종잡을 수 없었다.그래서 한국축구 특유의 투지도 발휘하지 못한 채 무기력한 경기를 하고 말았다. 감독들과 동료들의 위로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이 없어졌고, 숙소 뒤골프장에 있는 연못에서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세번째 경기였던 벨기에전에 투입돼 유상철의 골을 어시스트 할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만약 내년 월드컵 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최선을 다해 아픈 과거를 씻고 싶다. 24년 축구인생을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다.
정리=정원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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