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9월17일 중국 충칭(重慶)의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대한민국 광복군이 출범했다. 총사령에 이청천, 참모장에 이범석. 광복군은 1937년 중일 전쟁이 터져 중국 전역이 전장으로 변하자, 대륙 여러 곳에 흩어져 개별적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군사 조직들을 임시정부 산하에 묶어 군사활동과 외교활동을 통일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조직되었다.광복군은 이준식 공진원 김학규를 각각의 지대장으로 삼은 3개의 지대로 편성돼 출범했고, 41년 1월에는 주로 전지(戰地) 공작원들로 구성된 제5지대가 발족해 전후방 공작 업무를 수행했다. 나월환이 이끈 이 부대가 제4지대가 아니라 제5지대로 명명된 것은 이런 공작활동 때문이다.
정규군에 호응해 적의 후방에서 각종 모략ㆍ파괴ㆍ간첩 활동을 하는 비밀 집단이나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오열(五列ㆍ제5열, 또는 제5전선)이라고 부르는 관습은 스페인 내전에서 비롯되었다.
스페인 내전 때, 4개 부대를 이끌고 마드리드 공략 작전을 지휘한 파시스트 반란군 측의 에밀리오 몰라 장군이 “마드리드 시내에도 우리들에게 내응하는 제5부대가 위장해 잠입해 있고 결국 수도가 이 제5부대에 의해 점령될 것”이라고 프랑코 장군에게 보고한 데서 비밀 공작부대라는 뜻의 오열이라는 말이 유래했다. 그 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간첩ㆍ스파이와 동의어로 쓰이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터지자 광복군은 1941년 12월9일 대일 선전을 정식으로 포고했고, 이를 계기로 좌파 군사조직과의 합류를 추진해 그 이듬해 7월에 김원봉을 광복군 부사령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그가 이끌던 조선의용대를 흡수했다.
광복 직전에는 미국과 함께 국내 정진대(挺進隊)를 편성해 국내 진격 계획을 세웠으나 일본이 갑작스레 항복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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