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설사 증세를 보인 환자들을 제 때 신고만 해주었더라면….” 콜레라가 한창 번져가던 지난 주 초, 보건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원망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이 하소연은 그럴만한 까닭이있었다. 이번 콜레라의 진원지인 경북 영천 기사식당 손님 가운데 첫 환자가 발생하기 보름 전인 지난달 18일, 이 식당 종업원이 설사 등 콜레라증세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거사를 돌이킬 수는없지만 만일 담당의사가 보건당국에 콜레라 발생 가능성을 신고했더라면, 무더기 콜레라 감염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그로부터 1주일여가 지난14일, 대한의사협회가 느닷없이 ‘콜레라 확산에 대한 의협의 대국민 권고문’을 내놓았다. ‘음식물은 끓여 먹고 손발을 자주 씻고….’ 지난달 30일 울산에서 콜레라가 첫 발생한 이후 언론 등이 수차례 보도한 상식수준의 내용들이다.
의사협회의 해명은 더욱걸작이다. 전화를 통해 뒷북 대응의 까닭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의협 관계자는 “회장 선출 등 내부 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대응이 늦었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의사들은 질병 예방과 치료 보다는 내부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의사들 진짜 못 믿겠네요. 이제는 환자가 숨을 거둔 다음에야 질병을 경고하겠다는 식인가요….”의협의권고문 소식을 접한 한 시민은 이날 오후 본사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소리높였다. 의사들은 의약분업 이후 실추된 신뢰도를 또 한번 스스로 추락시켰다.
박광희 사회부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