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와 불교바로 며칠 전 출간된 수학자 김용운(74) 한양대 명예교수의 ‘카오스와 불교’를 읽으며 새삼 노 학자의 혜안과 경륜을 생각케 된다. 김 교수는 물론 이 책을 쓰면서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 대참사를 알았을 리 없다.
그러나 책은 첫 줄이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도쿄의 화염 지옥을 보았으며, 해방된 조국에서 인민재판의 광기를 목격하고 역사적 부조리를 원망했다.
그러한 체험을 통해 나는 인류적 업(業)의 심연을 엿보았다”고 시작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현재의 국제 역학에대한 걱정이다.
“전세계의 미국에 대한 신뢰감도 예전 같지 않다. 세계여러 나라는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엔 마약억제위원회의의 회원국에서 미국을 몰아냈다.
과학기술, 정보와 경제의 국제화는 더 이상 승자인 ‘가진나라’와 패자인 ‘가난한 나라’라는 식의 이분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끝을 맺는다. 마치 미국의 테러 참사를 보고 쓴 것 같은 구절들이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이러한 사유의 현실적합성을 줄곧 견지하면서, 전혀 이질적일것 같은 현대 과학의 최신 이론인 카오스 이론과 불교 사상을 하나로 꿰뚫으며 거기서 21세기 문명의 지적인 핵심 원리로 ‘생명패러다임’을 도출해낸다.
그 단초를 김 교수는 “카오스와 불교는한결같이 연기(緣起)의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기계론적인 과학이 아니라 성장하고 사멸해가는모든 생명현상에 나타나는 복잡한 과정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것이 카오스 이론이다.
“북경에 있는 나비한 마리의 날갯짓이 다음날 뉴욕에 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기상학자 로렌츠의 ‘나비 효과’는 카오스 이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인연(因緣)’으로 세계를 설명한다. 또한 카오스 이론의 가장 큰특징의 하나인 프랙탈은 ‘전체 속의 어느 한 부분이 바로 전체’임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하나가 전체이며 전체가 곧 하나라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 卽一)’의 사상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저자는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에서 탈구조주의 사상가 들뢰즈에 이르는 서양과학과 문명의 역사를 알기 쉽게 들려주면서 불교ㆍ노장 등 동양 사상과 비교하고, 독자들에게 인생과 자연, 우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구체적 지침들도일러준다.
‘기계론적 요소 환원주의의 세계관에 맞서 살아 숨쉬는 생명 현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그가 말하는생명 패러다임인데, 그 사유가 자연스럽게 바로 오늘의 현실 문제를 예견한 것이다.
“국제역학에서 어떤 나라도 일방적으로 다른 나라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공생과 상생은 인류에게 있어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존의 수단이다.”
김용운 지음ㆍ사이언스북스 발행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