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9월14일 미국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프랑스의 니스에서 작고했다.향년 50세. 그녀는 타고 가던 승용차의 뒷바퀴에 스카프가 걸려 질식사했다.덩컨은 20세기 모던 댄스의 어머니로 불린다. “미래의무용가는 영혼의 자연스러운 언어가 몸의 움직임이 될 만큼 몸과 영혼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함께 성장하는 그런 무용가일 것이다.
그 여성 무용가는 정령이나 요정이나 바람둥이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그 무용가는 여성의 자유를 춤출 것이다.”
덩컨은 이런 선언과 함께 무용 신발 토슈즈를 벗고 무대에 나섰다. 그 토슈즈는 수백년 동안 발레극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벗어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로써 이사도라는 ‘맨발의 이사도라’가 되었고, 그녀와 함께 춤의 혁명이 시작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덩컨은 열 살 무렵 제도 교육을 팽개치고 독학으로 무용을연구했다. 그녀는 22살때인 1899년에 시카고에서 데뷔했지만,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20세기 들어 유럽에서 활동하고 부터였다.
그녀는 자기예술의 영감을 그리스 예술에서 찾았고, 그 때까지 무용이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음악 작품을 무용에 도입했다.
유럽은 그녀에게 열광했다. 혁명 이후의러시아 곧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열광은 쌍방향적이었다.
1905년 혁명 때 덩컨은 우연히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는데 거기서 목격한 민중의시신을 보고는 “압제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을 맹세”했다.
결혼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덩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한 사람은 러시아 시인 에세닌이었고, 그녀가 학생들을 가르친곳은 소련 문교인민위원 루나차르스키의 부탁으로 떠맡게 된 모스크바 무용학교였다.
덩컨의 유골은 파리의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돼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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