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회상록“공산당의 충성스런 아들인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소비에트 음악의 발전과 사회주의 휴머니즘 및 인터내셔널리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전 생애를 바쳤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가 죽자 소련 공산당이 바친 헌사다. 서방 신문의 부음 기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의 타임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이자 공산주위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헌신적 신봉자”라고 썼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가혹한 이데올로기적비판을 받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이마를 찌푸린 채 비웃거나 구역질을 할지도 모르겠다. 구소련출신 음악학자 솔로몬 볼코프가 쓴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증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쇼타코비치는 소비에트 체제,특히 스탈린의 독재를 증오했다. 그는 “분노하는 어리석은 군중에 맞서는 외로운 개인”이었다.
숙청과 유형의 피바람을 피하기 위해 겉으로는복종했으나 내면적으로는 저항했다. 15편의 교향곡을 비롯해 실내악, 관현악, 오페라, 발레 등 100편 가까운 그의 작품 목록은 스스로 ‘부끄러운사업’이라고 말한 체제선전용 음악을 포함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예술을 압살하는 권력의 횡포를 노골적인비판 혹은 비극적인 풍자로 조롱하며 분투하고 있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거기선 피와 눈물이 흐른다.
쇼스타코비치의 구술을 정리한 이 책은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됐다. 여기서 그는가장 솔직하게, 그리고 쓰라린 심정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있다.
그의 말투는 신랄하고 냉소적이다. 독자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거인의 초상을 보게된다. 러시아혁명, 2차 세계대전, 스탈린-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로 이어지는 격동기를 살면서 그가 얼마나 끔찍한 상처를 입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스탈린과 흐루시초프 시절 두 차례에 걸쳐 공개비판을 받고 자살 직전까지갔다. 어떤 작품은 금지곡이 됐고 그는 ‘민중의 적’으로 범죄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살아남기 위해 그는 비굴해졌다. 쓰지 않은 반성문을 읽고, 공산당에 입당하고, 반체제인사를 비난하는 성명에 서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적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항변하고 있다.
“나는 결코 내 음악을 통하여 권력에 아부하려 하지는 않았다. 또 결코 그들과 ‘애정 관계’에 빠지지도 않았다. 내가 권력에 너무 가까이 갔다고 말하지만, 시각적 착각이다.”
이 책은 스탈린 치하 러시아 지식인의 삶을 폭로하는 고발장이다. 비통하고 감동적인 회고다. “연민과 찬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의 감상문은 정확하다.
이 책이전하는 또 다른 귀중한 보고는 쇼스타코비치 당대 예술가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다. 작곡가 글라주노프, 프로코피에프, 스크리아빈, 지휘자 므라빈스키,토스카니니, 시인 미야코프스키, 영화감독 에이젠쉬타인, 연극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 등 거장들이 등장한다.
이 대목들은 매우 흥미롭다. 이를테면 토스카니니는 ‘사디스트’이고 ‘음악의 스탈린’이며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횡설수설’이라고 평가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음악학자들은 게으름뱅이”라며“그들이 쓰는 책은 바퀴벌레처럼 독자의 머리를 감염시킬 뿐”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이 책은 예외다.
쇼스타코비치의 전기 중 그가 스스로 원했고 진정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고 여겨지는 것으로는 이 책이 처음이다.
오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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