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읽은 건 1991년 가을쯤이었다. ‘노르웨이의 숲’이었는데,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듯한 신선한 경험이었다.‘노르웨이의 숲’으로 시작한 하루키 소설 읽기는 ‘댄스 댄스 댄스’와 ‘양을 둘러싼 모험’으로 이어지고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등 한국에 출판된 그의 모든 장편들을 섭렵했다. 서점에 그의 신간이 새로 놓여있지 않을 때는 그의 에세이집, 단편 모음집도 열심히 찾아 읽었다.
한창 유행하는 튀는 바지를 입고 나선 아줌마처럼 유행처럼 번지는 하루키 열풍에 중늙은이가 편승한 것 같은 쓸데없는 쑥스러움에, 나는 혼자 오고 가는 지하철에서 책장을 펴들었고 내 집의 이부자리 곁에 그의 책을 두었다.
‘나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워’라고 하소연하거나 울부짖지 않지만, 다소 냉소적인 눈빛으로 ‘가만히’ 삶의 불가해를 바라보는 듯한 주인공들을 만들어내는 하루키의 빈틈없는 구성과 빼어나게 간결한 문장력, 그리고 재치를 넘어선 기발한 상황 설정, 일상에 대한 섬세하고 감각적인 묘사에 매료되었다.
영화로 치면 개성과 감각의 촉수를 드리운 채 간결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워할 수 없는 대중영화를 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 같은 것이 그의 소설에 있다.
“바람 한점 불지 않는 더운 여름밤, 창밖으로 바라본 깜깜한 어둠 속에 아주 새하얀 브래지어가 어디선가 둥실 날아와 허공에 떠올랐다.”
그의 단편집에서 읽은 문장이다. 어울리지 않는 공간에 낯선 물질이 끼어드는 ‘기묘한’ 상황에서 느껴졌던 삶의 이해할 수 없음, 무료하고 나른한 일상, 상처입은 심연을 그는 그렇게 묘사한다.
그의 주인공들은 영화 만드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접속’의 시나리오 회의 때, 인물의 캐릭터 구축을 이야기하며 빈번히 회의 테이블에 등장한 것이 하루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었다.
감독의 책상 위엔 시나리오 작업 이전부터 하루키의 단편집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가 놓여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연인지 의도인지 ‘접속’의 주인공인 라디오 음악프로 PD 권동현의 ID가 ‘해피엔드’였다.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이 ‘렉싱턴의 유령’과 ‘스푸트니크의 연인’이다. 이젠 예전만큼 그의 신간을 기다려서 읽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과 같이 보낸 30대가 다 가는 때여서 그럴까. 어른스러워진 걸까, 늙어가는 것일까.
심재명 명필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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